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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3일차 - 뚱뚱하고 미끈한 무리들

by 양털책갈피 2024. 2. 22.

1. SORA, FUJI, SUNSHINE! (누마즈 3일차 / 츠지 사진관 ~ 아와시마)

버스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기로 한 3일차. 아와시마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츠지 사진관에 들렀다. 입구 벽에서부터 반겨주는 강렬한 칠판 그림. 

 

내부에는 여러 굿즈들, 캐스트들의 방문 기록, 누마즈 캔뱃지 액자 등등 동네 사진관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무언가 많았다. 사진에 취미가 없다보니 관련 도구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구경만 하고 나오기는 뭣해서 캔뱃지를 샀다. 사장님과 몇 마디 대화를 하려 했지만, 계산과 동시에 손님이 오셔서 그러지 못 했다.

 

아와시마로 향하는 버스는 만원버스였다. 탑승구 바로 앞, 기사님 옆에 서서 가야했을 정도였다. 내 앞의 다른 여행객 선생은 정차 때마다 내렸다 다시 타기를 반복해야 했다. 여독이 쌓이는 중에 버스를 서서 타려니 꽤 고생이었지만, 한국 버스와 다르게 운행이 점잖아서 버틸만했다.

 

그리고 아와시마 전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내렸는데, 기사님께서 여기서 내리면 운행 요금이 좀 더 싸기 때문이라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나도 좀 더 일찍 내렸다.

 

입장권을 사고 배를 기다리며 찍은 아와시마의 전경.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 했는데, 구름이 있긴 해도 비가 올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작 어젯밤만 해도 빗방울이 날렸는데 말이다. 그리고 틀린 예보 때문일까, 입장과 주차로 인파대란이 문제라던 아와시마는 조금 분주할뿐인 관광지 느낌이었다.

 

이날 이후로 사람이 미친듯이 붐볐다는데, 정말 시기가 좋았다.


2. Shangri-La Shower (누마즈 3일차 / 개구리관 & 마린파크)

선착장에서 내린 뒤, 11시 공연을 마치고 휴식 중인 돌고래를 구경하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구름이 걸려 있지만, 확실히 선명하게 잘 보이는 후지산. 앞에 줄을 서있던 일본인 무리도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건 오랜만이라 말했다. 수상하리만큼, 누마즈 여행은 운이 좋았다.

 

어제 먹은 아지텐동 때문일까, 솔직히 1시간 줄 서서 먹을 맛은 아니었다. 새우맛이 강해서 다른 해물들 맛이 잘 안 느껴졌다. 그리고 치엥이를 두고 찍는 게 꽤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이 식탁 위에서 네소가 잘 안 섰다. 쟁반에 받춰 끼우듯이 찍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냥 쟁반 위에 아쿠아동과 치엥이만 두고 찍었으면 더 편했을 것 같다. 장시간 대기로 정신이 혼미했던 것 같다.

 

개구리관 가는 길에 발견한 가마우지. 날개를 말리는 중인 것 같다. 아까 밥 먹기 전에 바다를 보는데, 시커먼 무언가가 잠수를 해서 뭐지 했는데, 이 녀석이지 않을까. 사람을 경계하지도 않고, 시선을 즐기는 슈퍼스타 기질이 있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오후에 있을 돌고래쇼에 난입하여 시선을 강탈한다.

 

사람이 많아서 엥엥이를 꺼내 찍지는 못 했지만, 이래저래 재밌게 잘 본 개구리관. 습하고 더운 느낌이 정말 양서류들이 사는 곳이구나 체감되는 곳이었다. 사육장 안 곳곳에 숨은 녀석들을 찾는 재미도 있었고, 주변에 있던 개구리 덕후의 강의를 귀동냥하는 재미도 있었다. 근데 사진은 잘 나온 게 이 셋 뿐이다.

 

오후 공연 시간에 맞춰 도착한 돌고래쇼. 영상이나 사진은 따로 안 찍었다. 이 사진은 애들 몸푸는 중에 찍은 거다. 아직 견습인 애들이라 어려운 기술은 선보이지 않았지만, 똑똑한 생물이라 그냥 그것대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물고기 달라고 얼쩡거리는 가마우지가 온갖 어그로를 다 끌었고, 해설자 누나도 야생의 녀석이니 관심 주지 않아도 된다 계속 브리핑했다.

 

마린파크의 수족관은 심해 수족관과 달리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곳곳에 사육사의 사진도 걸려 있고, 조만간 폐장이 결정된 이곳은 그 사실과 달리 너무나도 밝았다. 마린파크를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애니메이션 《하얀 모래의 아쿠아톱》. 주인공이 느꼈을 기분이 무엇인지 현장에 오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체험 수조에 있던 곰장어. 곰장어는 맛있다. 원래 이 녀석 건드리면 크툴루 점액질을 뿜는데, 포식자인 걸 알아서 그런가 얌전했다.


3. 青春の輪郭 (누마즈 3일차 / 아와시마 ~ 우치우라)

마린파크를 나와 이제는 섬을 걷기 시작했다. 점심에 시간을 너무 써버려서 멀리는 못 갔고, 바닷가 풍경만 적당히 보다가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예의 그 터널. 관리가 예전같지 않다더니, 확실히 기대했던 비주얼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대낮이라 내부가 환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잘 찍힌 사진만 봐와서 그럴지도.

 

태풍으로 무너진 해안산책로도 그대로다. 그래도 풍경이 개쩔고 날씨도 끝장나게 좋으니 아무렴 어떤가. 여기서 조금만 더 걷다가 선착장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땡겨서 바닐라맛 하나 우적우적 먹어치웠다. 이러니 살이 찐다.

 

섬에서 나와 우치우라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길래 이미 떠난 거라 생각, 우치우라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뒤에서 버스가 지나가더라. 아ㅋㅋ 시골 버스는 원래 그렇다. 시간보다 늦게는 와도, 빨리 왔다고 혼자 슝 가지는 않는다.

 

그덕분이라 하긴 좀 그렇고, 일이 꼬이긴 했어도 우치우라 마을 입구를 적당히 구경하며 잘 걸었다. 이런 방랑여행객 콘셉트도 나쁘지 않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할 수 있는, 청춘의 한 구절 아닌가. 근데 다시 걷긴 싫다.

 

미토파라가 보이는 낮은 언덕길의 초입, 그 바로 옆에 등장한 치카의 집 야스다야 여관. 치엥아, 이곳이 네 인격신의 거처란다. 고급 여관과 수족관이 붙어있는 기묘한 광경이 참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어지러움을 자랑했다. 이 동네는 원래 이런 동네인가.

 

여관 바로 앞 해변가는 역시 Aqours 천지다. 내가 쓴 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써둔 것 중에서 제일 잘 쓴 걸 찾아 찍었다. 신발이 한 켤레라 더럽히면 안 된다.


4. 水しぶきのサイン (누마즈 3일차 / 이즈·미토 씨 파라다이스)

입장과 동시에 반겨주는 오버로드 나마우칫치. 이 친구 움직임을 가만히 보니 정형행동을 보이더라. 저 덩치가 이곳에 갇혀 있으니 오죽 답답했겠나 이해는 된다만, 그렇다고 무작정 풀어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관리를 조금만 더 잘 해줬으면 바랄 뿐이다. 정형행동이 뭔지 궁금할 수도 있는데, 그냥 구글에 물어보는게 더 정확하니 그쪽으로 부탁드린다.

 

미토파라의 수족관은 입구에서 마주친 오버로드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녀석이 없다. 구소쿠무시에 해파리에 다른 애들에, 전부 심해와 아와시마에서 대강 다 봤던 애들이었다. 수족관만 세 곳을 갔는데, 새로우면 그건 그거대로 무섭다. 근데 귀국하는 날에 수족관을 또 간다. 

 

자연생태장의 NPC들. 뗑컨들은 나한테 관심도 없고, 뚱뚱하고 미끈한 녀석들은 저렇게 널브러져 있다. 그나마 돌고래는 나에게 반응을 해줬는데,

 

흉악하기 그지없는 하얗고 검은 새대가리들을 보러 움직이니 따라와서 인사했다. 이 친구들은 기본이 공연에 나서는 돌고래들이라 사람을 보면 뭘 해야 하는지 아는 눈치였다.


5. New Year’s March! (누마즈 3일차 / 쇼게츠 & 하치후쿠)

버스 시간이 남는 동안 쇼게츠에서 간단히 휴식을 취했다. 모카 케이크가 맛있었다. 라일라프스 도라야끼와 귤 주스는 의외로 평범한 맛이었다. 과일 귤을 좋아하는 것과 귤의 가공품을 좋아하는 건 역시 다른 영역인 듯 하다. 병에 담긴 귤 주스는 포장으로 사갔는데, 다 먹고 일어서며 까먹고 나가는 바람에 돌아와서 다시 챙겨갔다. 다행인지, 사장님 사모님 두 분 모두 주방에 계셨어서 어색할 일은 없었다.

 

저녁은 호텔 근처 야끼니쿠 가게 하치후쿠. 알고 찾아간 건 아니었는데, 한국 고깃집 콘셉트였다. 대충 1만엔 정도 구워 먹고 나왔는데, 가격표 보면서 벌벌 떨었다. 아무리 돈 걱정 없이 먹기로 했다지만, 한 끼에 10을 태우는게 가당키나한가. 한국에서도 다섯 자리 가격대로 먹는 일이 없는데, 머나먼 이국 타지에서 10만원치를...

 

그래도 맛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역시 편의점에 들러 푸딩을 사고, 만두도 사왔다. 원래 오른쪽의 둥근 푸딩에 엥엥이들을 쌓아두고 사진을 찍었는데, 하필 거울 방향이라 내 모습이 찍혀서 뭔가 애매한 이 구도의 사진밖에 안 남았다. 당장 먹지도 않을 푸딩을 저렇게 상온에 둬도 되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텐데, 자기 전에 냉장고에 잘 넣었다.

 

끝으로 내일은 매우 높은 확률로 비가 올 예정인데, 상황이 어찌될지 알 수가 없어 (당장 오늘도 비가 온다 했었으니) 루트를 2곳으로 세워두고 아침에 날씨 보고 정하기로 했다. 뭔가 지옥같은 날씨가 이어질 느낌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개구리관 쿠지가 대흉이었다. 건강은 원래 나쁘고, 돈도 원래 못 버는 직업이고, 연애는 할 생각과 자격이 모두 없고, 공부는 할 때가 지났다. 그런고로 글자에 적힌 건 타격이 0인데, 그 불운이 어디로 가겠나. 다 날씨로 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