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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4일차 - 에브리데이가 쇼핑이었다

by 양털책갈피 2024. 2. 24.

1. Brightest Melody (누마즈 4일차 / 라쿤 옥상)

여유로운 금요일 아침. 하늘을 보니 저 멀리 비구름이 오고 있다. 오후가 되면 날씨가 뒤틀릴 것이 확정된 느낌, 우천 시 행동요령에 따라 오늘은 누마즈 시가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점심은 호텔 근처 장어덮밥. 원래는 어제 저녁에 가려했는데,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수요일이라 그랬던 건지, 휴업 상태였다. 굳이 어제 왜 쉬었는지 묻지는 않았고, 조용히 밥 먹고 나왔다.

 

첫 행선지는 브라메로 성지, 라쿤빌딩의 옥상. 날씨가 좋았다면 그림이 훨씬 예뻤을텐데, 흐린 건 둘째 치고 밤에 왔던 비 때문에 바닥도 지저분하다. 여기서도 운이 좋다면 후지산을 볼 수 있다 했는데, 구름 때문에 산봉우리는커녕 저게 후지인지 그냥 언덕인지 구분도 안 됐다.

 

엘리베이터 앞 벽면에는 다이아 생일을 기념하는 판떼기가 붙어있다. 내가 떠난 뒤에는 아마 카난으로 바뀌었을 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3개지만 옥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1개 뿐이다. 처음에 모르고 타서 피트니스 센터 데스크에 물어보고 다시 내려갔다 올라왔다.

 

 이나민타운 연간 회원이자, 치카오시 안쨩오시라 써붙이고 왔다. 영원하라 이 나 미.


2. ラブノベルス (누마즈 4일차 / 애니메이트 & 게마즈)

다음은 애니메이트. 굿즈를 잔뜩 살 거라는 기대와 달리, 살 게 없었다. 환일 아크릴 예쁜게 있긴 했다만, 몇몇 빠진 인원이 있어서 살 수가 없었다. 산다면 올컬렉이 진리다. 당장 오시만 사자 어쩌자 해도, 결국 메루카리와 스루가야 뒤적거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애니메이트에서 눈여겨본 건 위 사진의 만화책. 왼쪽의 만화는 〈신경 쓰였던 사람이 남자가 아니었다〉, 오른쪽의 만화는 〈슈퍼 뒤에서 담배 피우는 두 사람〉 이다. 각각 23년과 22년에 차세대 만화 대상 Web부문 1위 수상작들로, 굉장히 재밌게 봤다. 슈퍼담배는 정발판을 e-book으로 소장 중이기도 하다. 3권 언제 정발할라나.

 

여담으로, 2023년 차세대 만화 대상 시상식 진행자가 논쨩이었다 훙훙.

 

종합 굿즈센터인 애니메이트와 달리, 럽라의 배럭 역할을 하는 게마즈. 규모는 작아도 실속은 꽉꽉 차있었다. 여기저기 캐스트들 싸인과 사진도 걸려 있고, 굿즈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지름신이 한 번 강림했는데,

 

바로 겨울의상 리에라 아크스타를 질렀다. 디자인 보자마자 이건 너무 귀여워서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츠미가 품절이라 컴플릿은 실패했다. 그래도 도쿄 가면 나츠미도 있겠지... 그랬겠지...

 

이외에는 Find Our Numazu와 안진집으로 불리는 치카 포토북을 샀다. 


3. 天才なのかもしれない (누마즈 4일차 / 선샤인 카페)

열심히 쇼핑 했으니, 잠깐의 오야스미 타임. 방문한 곳은 누마즈역 앞의 선샤인 카페. 가게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었는데, 흔히 생각하는 카페가 아니라 포차 같은 느낌이라 그런 것 같다. 뭔가 진정이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리고 사장님의 사투리가 상당하셔서 적잖이 당황했다. 이번 여행 중에 유일하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은 때가 이때였다. 그래서 주문 안내도 영어로 받았다.

 

음료는 지금까지 먹던 무난무난한 아이스티와 심해주스 맛. 이때 기억나는 건 다름 아닌 퇴식구 찾기. 처음에 안내받을 때 "컵은 반납" 이라고 안내 받아서, 당연히 퇴식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어디에도 없었다. 양손에 컵을 들고 두리번거리는데, 입구쪽에 앉은 한국인 물붕이로부터 자리에 두고 나오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며칠만에 듣는 유창한 한국어라 진짜 당황했다. (도와주신 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컵을 반납하라고 따로 공지까지 한다는 건, 누군가 저 평범한 유리컵을 들도 나갔다는 소리 아닌가? 미친놈들인가.


4. Butterfly (누마즈 4일차 / 프리미엄샵 & 플라사 베르데)

선샤인 카페를 나서서 이제는 누마즈 북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찍은 역 정면샷.

 

소문으로만 듣던 누마즈 굴다리. 대구역에서 칠성로 메가박스 가는 길에 보면 이런 도로가 있는데, 오랜만에 고향(은 아닌데 대학을 대구에서 다녔으니 고향이라 칩시다) 생각도 나고 그랬다. 딱히 좋았던 건 아니고. 도시미관과 교통에서 이런 굴다리 길이 있는 게 좋은 현상이 아닌데, 세련된 남부와 달리 북부는 시작부터 낙후지역이란 인상이었다. 그렇잖아도 불균형 개발 문제가 이 뒤에 방문할 플라사 베르데에 관련 자료로 전시되어 있었다.

 

지나가다 발견한 리코 거리. 저 간판만 찍고 지나쳤다. 시간만 있었다면 한 번 가봤겠지만, 이것 역시 다음 방문으로 미뤄졌다.

 

별 거 없다고 해서 기대 없이 들린 프리미엄 샵. 그런데 이게 웬 환팀펑크? 이거 말고 볼 게 없긴 했는데, 환일 스팀펑크면 이미 큰 거 아닌가. 샵으로 가는 길에 본 저 일러스트를 보며 제발 아크스타가 없길 빌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한가득 있었다. 아ㅋㅋ 지름신이 또 강림했다.

 

드디어 도착한 플라사 베르데. 세컨 때 썼다는 전설의 기관차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뚜껑들. 라이브를 처음 본 게 아쿠아 세컨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나마덕질의 계기가 아쿠아 세컨은 아니었지만, 가속 페달을 밟은 건 세컨이지 않을까.

 

그리고 앞서 말한 개발 불균형 문제, 전시장으로 오는 복도에 액자로 관련 내용을 정리해뒀었다. 현재 개발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에서 파악한 문제가 뭔지,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지, 행정과 기록물 관리 일을 해봤던 터라 느끼는 바가 많았다. 한국의 지방소멸 사태와 관련하여, 누마즈시처럼 최소한 이런 식의 "성의"를 보이는 지자체가 있던가. 찾아보면 나오기야 하겠다만, 누마즈처럼 시민참여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역 학생들의 세미나 발표 자료를 행정자료와 함께 비치하다니, 적어도 내가 일했던 지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5. この街でいまキミと (누마즈 4일차 / 아게츠치 상점가 & 아케이드 명점가)

굿즈를 너무 많이 샀다고 느껴 일단 호텔에 좀 두고 오기로 했다. 그렇게 호텔로 돌아가던 중, 저녁을 누마즈역 아트레에서 사갈까 싶어 잠깐 들렀는데, 고기꼬치와 초밥을 사야겠다 맘 먹고 바로 나왔다. 폐장시간이 다가오면 할인을 오지게 때린다고 하니, 급식늦게받기메타를 노리기로 했다.

 

호텔로 가던 중 떠올라서 방문한 돌하우스. 수공예를 좋아하는데다가 한때 인사동 쌈지길 장인들과 친구 먹던 시절이 있어서 구경만 해도 재밌었다. 처음에 들어가서 구경할 때는 (아마도 사장님 부부의 따님이신 듯한) 직원분께서 형식상 카운터에 나와 있었는데, (아크스타 장식장에 달아볼 심산으로) 전기장치를 유심히 살펴보니까 점점 솔깃솔깃한 낌새가 보였다.

 

물론 전선과 전구는 전압규격이 맞지 않으니 포기해야 했다. 대신 DIY 키트가 있어서 이걸 하나 살까 고민하다 직원분께 초심자도 만들 수 있는지 물어봤다. 진짜 살 줄은 몰랐는지 깜짝 놀란 눈치였는데, 대강 설명을 듣다가 키트들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이때 직원분이 가게 안으로 뛰어가시더니 잠시 후 사모님께서 나오셨다.

 

사모님으로부터 필요한 재료들이 다 들어있는지, 내가 따로 준비해야 할 게 있는지 등등 키트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그렇게 키트 하나를 사게 됐다. 기념선물로 카난 브로마이드 한 장을 받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잡담을 시작했다. 대충 한국인임을 밝히고, 한국 드라마 얘기를 했다. 어딜 가나 먹히는 〈사랑의 불시착〉. 안타깝게도 모든 한국인이 횬빈상은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드려서 죄송했다. 하지만 현빈이 있다면, 누군가는 우칫치를 해야 우주의 균형이 맞지 않겠나.

 

그리고 또 지나가다 생각나서 찾아간 야바커피. 음료수 한 잔과 나폴리탄 스몰을 주문해서 해치웠다. 짐은 주렁주렁 달고, 호텔에 두고 와야지 와야지 하다가 뭘 이렇게 자꾸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나폴리탄은 나폴리탄 맛이었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생각나서 찾아간 그랜마. 몽블랑, 쇼트케이크, 타천사를 샀다. 그리고 미리 선물용으로 어떨까 해서 몇몇 상품들을 봐뒀는데, 기왕 준다면 특이한 걸 주자 해서 포장지에 아쿠아가 그려진 밀크만쥬로 내정해뒀다.

 

(이제서야 진짜로) 호텔에 짐을 두는 겸 잠깐 휴식. 그리고 마감세일이 시작될 듯한 타이밍에 맞춰 다시 누마즈역 아트레로 향했다. 결과는 보는 것처럼 대성공. 저렇게 초밥을 양껏 사도 1,000엔이 안 된다. 다만, 눈여겨 보았던 고기꼬치는 거의 다 나가서 닭다리꼬치만 2개 샀고, 육류가 모자라다 싶어서 오는 길에 만두를 포장해갔다.

 

만두를 사러 들어가니 손?님 한 분이 앉아서 요리사 형님과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사장님이셨다. 사장님은 딱 호쾌한 아저씨 스타일이셨다. 앉아서 기다려도 된다 앉아라, 어디서 왔냐, 점심에 뭐 먹었냐, 러브라이브 때문에 왔냐, 역 앞에 카페 사장이랑 친구다 등등 한국에서도 느껴본 그 익숙한 맛이었다.

 

그리고 쐐기를 박는 멘트는 "한국 여자들 귀엽지~ 일본 여자들은 별로야!"

 

허허허, 그 일본 여자들(=캐스트)이 좋아서 일본 온 것도 있는데, 맞장구 치기도 어렵고, 주갤러처럼 말하기도 그렇고, 그냥 웃어 넘겼다. K-pop 얘기로 능청스럽게 넘어가니 타깃은 요리사 형님에게로 바뀌었는데, 요리사 형님이 르세라핌의 팬, 그 중에서도 김채원 양 오시라고 한다. 내가 K-pop을 모르니 자세하게 얘기는 못 했는데, 대충 한국 사람들도 보는 눈은 비슷하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만두도 사고, 초밥과 만두로 오늘의 일정은 끝...

 

은 무슨. 돌아가는 길에 마츠우라 주점에서 술 샀다. 맥주와 매실주를 한 병씩 샀는데, 사고나서 마시려고 보니 병따개가 없어서 맥주를 못 마셨다. 어쩔 수 없이 매실주만 마시고, 병따개는 편의점이 됐든, 호텔이 됐든, 어디서 구해볼 생각으로 일단 냉장고에 넣어뒀다.

 

그리고 야식은 그랜마. 한국은 바밤바 때문에 밤맛 디저트들이 전부 바밤바맛이라고 폄하받는다는 밈이 있는데, 그건 제대로 된 몽블랑을 안 먹어봐서 그렇다. 바밤바랑 전혀 다른 밤맛이었다. 타천사는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한 5살만 어렸어도 맛있게 먹었을텐데, 지금 먹기엔 좀 많이 달았다. 그래도 딸기잼이 안에 들어있던 건 꽤 신선했다. 초코맛만 약했으면 하나 더 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강한 초코맛으로 먹는 게 타천사니까 내 입맛을 바꾸는 게 맞을 거다.

 

엥엥이들이 포크 들고 협박해서 쇼트케이크는 엥엥이들 줬다. 달콤한 정석의 맛, 케이크의 교본이라고 한다.

 

내일은 누마즈항 남부 쪽으로 갈 생각이다. "맑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