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oliday∞Holiday (누마즈 5일차 / 리버사이드 호텔 ~ 누마즈항 남부)
누마즈에서 처음 맞이하는 주말이자, 누마즈 여행의 마지막 날. 버스 시간이 조금 남아 호텔에 있다는 전시실을 찾아갔다. 생일 기념 액자와 캐스트들의 싸인, 그리고 환일까지 알뜰하게 모아뒀다. 사진도 여러장 찍었는데, 유리에 내 모습이 비치는 바람에 올릴 수가 없다.
누마즈항 남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찍은 사진. 배경으로 보이는 하늘이 매우 맑다. 예감이 좋다.
버스에서 내리자, 도착한 곳은 어느 고즈넉한 마을. 재활 병원이 위치한 이곳은 평범한 골목길이란 인상이 아니었다. 어떤 쪽으로든 슬럼화된 구석이 있는 여타 골목과 달리, 너무 깨끗하고 적막했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모습이 오히려 현실성이 없다. 그런 풍경에 폐쇄된 문화재수장고는 약간이나마 현실성을 더해줬다. 이런 곳을 학교로 쓰려니 애들이 반발하지.
2. 未体験HORIZON (누마즈 5일차 / 세리자와 코지로 기념관)
오늘의 주요 목적지, 세리자와 코지로 기념관. 공원 한켠에 자리한 모습이 기념관 보다 카페와 더 가까워보였다. 기념관이 우째 이런 투박한 외관일까. 아마 이런 이미지로 건물을 올린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념관 안은 나에게 매우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 시민개방 기록관의 일상적인 풍경 그 자체였다. 누군가의 개인 수집품같은 전시와 나 이외에 아무도 없는 방문객. 한국이나 일본이나, 주말 아침부터 어느 작가의 인생을 살피러 오진 않을 테니. 물론 굳이 주말 아침부터 전시관을 찾는 괴짜가 한 명씩은 있다.
세리자와 코지로의 수기 원고와 여러 출판물들, 그리고 누마즈 100주년을 맞이해 누마즈 출신의 다른 작가들을 모은 특별전이 1층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사진처럼 네소도 있다. 저 커다란 마루는 등에 책보를 메고 있다.
2층, 미호라의 모티프 나비가 있다. 계단을 오르자 탁 트인 2층 전시실엔 이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이 존재감에 짓눌려 소름이 돋았다. 겉치레를 모두 거둔 공허한 장소라 오히려 나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 담장 너머의 바다. 평화롭다. 세리자와 코지로의 작품 세계 기저에 깔린 반전주의는 이러한 평화로움에서 탄생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큐레이터이신 듯한 기념관 가이드 선생님과 몇 마디 대화.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지도를 꺼내오셔서 출신지를 물어보셨다. 내 고향이 적혀있을 것이라 생각도 않았는데, 버젓이 점이 찍혀 있어 신기했다. 한국 지도가 비치된 것도 놀랍다만은, 평소에 뭘 보셨길래 한국이 입시 지옥이고, 서울 집값이 드럽게 높다는 것도 아시는 걸까. 기록관 관리자라는 어렴풋한 동질감 사이에서, 문헌과 자료와 기록물에 진심인 그런 마니아틱한 성격이 느껴졌다.
덧붙여 한국에서 세리자와 기념관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매우 궁금해하셨다. 이때 럽라 얘기만 하고 누마프 얘기를 안 했는데, 아마 누마프 보셨으면 반응이 더 좋았지 않았을까.
3. 未来予報ハレルヤ! (누마즈 5일차 / 토고 해변)
기념관에서 나와 공원과 골목을 가로지르니 나온 제방과 그 위의 산책길. 마을을 통해 목적지로 갈 수도 있었지만, 이 위가 너무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태양은 바다 위에 하얗게 떠오르고, 바닷바람의 추위는 낯설은 따스함이라. 이대로 고요테이의 해변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공사 중 팻말과 함께 길이 끊겼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제방을 내려오니, 근처에 리바쥬가 있었다.
리바쥬 가는 길에 찍은 후지산. 난잡한 피사체들의 퍼레이드에서도 맑음의 청취가 느껴진다. 이때 저 후지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 점심에는 누마즈항에 가기로 결정했다.
한적한 주택가 사이에 등장한 세련된 베이커리. 맛있어 보이는 제과가 많아 한참을 고민하다 쇼콜라 케이크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카운터의 직원분께 추천받아 절분 기념으로 만든 앙금빵 하나도 데려갔다.
대로와 공원과 숲길을 헤매다 도착한 토고해변. 지금까지의 누마즈 중 가장 찬란했던 날씨. 보자마자 감탄이 나오는 이 풍경. 에드바르트가 들은 자연의 소리는 실존한다. 그가 들은 것이 일렁이는 붉은 비명이라면, 이 날 내가 들은 것은 강인하고 우렁찬 푸른 포효다.
4. ミチノサキ (누마즈 5일차 / 누마즈항 & 오란다관)
점심시간, 버스를 타고 누마즈항으로 향했다. 3일 전에 보았던 다리와 언덕길에서 내려와 누마즈항 시장으로 들어가니 뭔가 여행을 다녀왔다는 느낌이었다. 벌써 누마즈는 고향같다. 점심은 누마즈 버거. 생각보다 평범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카노강을 따라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이 위치에서도 강물의 물고기가 생생히 보였다.
지나가다 마주친 오란다관. 봤으면 들어가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커피만 마시고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5. 小夜啼鳥恋詩 (누마즈 5일차 / 중앙공원 & 고양이와 백조)
사실상 누마즈에서의 컨텐츠가 종료된 5일차의 오후. 추가로 무언가를 하기엔 시간이 모자랗다. 그랜마에서 밀크만쥬를 사고, 호텔 침대에 누워 가만히 귀국까지의 일정을 되뇌이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호텔 근처의 성지라면 아직 둘러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찾은 곳은 누마즈역과 호텔 사이에 위치한 중앙공원. 매우 가족적인 분위기에 한산한듯 분주했다.
호텔로 돌아갈 때는 나선계단을 타고 카노강을 따라 돌아갔다. 잠깐 계단에 앉아 멍하니 쉬기도 하고, 평정심을 되찾으려 걷기도 했다. 아마 이 감정은 누마즈를 떠난다는 아쉬움과 일기예보가 예견하는 혹시 모를 귀국편의 사고, 그리고 분주한 도시를 돌게 될 소란스러움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일 것이다.
저녁은 역 근처의 라멘집. 오늘 처음 쌀이 들어가는 터라 밥을 많이 받을까도 했지만, 그냥 작은 사이즈로 받았다. 그런데도 배가 불러 저것조차 다 못 먹을 뻔 했으니, 작은 공기를 택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고양이와 백조를 한 번 더 가려했는데, 라이브 공연 중이라 출입이 불가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호텔로 돌아가 7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창밖에 불꽃이 일었다. 후지산이 폭발한 줄 알았는데, 불꽃놀이였다. 중앙공원으로 나설 때, 로비에서 웨딩사진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아마 그 패키지 상품이 아닐까.
불꽃놀이를 본 뒤 고양이와 백조로. 첫날 가장 맛있게 마셨던 마루 음료와 혹시 싶어 주문해본 (메뉴판에 없던) 상그리아. 이날 일본과 이란의 축구 경기가 있어 스크린을 내려두고 손님들이 축구를 보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타국에서 그 나라의 국대를 응원하다니. 그리고 아주 영리하게도, 전반전만 보고 나왔다.
다음날은 누마즈를 떠나 도쿄로 간다. 날씨는 비와 강풍이 예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