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아두면 이해에 도움되는 사실들
- 세리자와 코지로는 반전주의(反戰主義) 사상가다.
- 일본국 헌법 제9조는 전쟁을 포기하고 정식 군대를 가지지 않겠다는 조항으로, 이 때문에 평화헌법이라 불린다.
- 본 사설은 1954년에 발표된 글로, 평화헌법에 반발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사설이다. (2010년대의 평화헌법 개정 논쟁과는 무관하다.)
나의 헌법관(私の憲法観)
세리자와 코지로
(芹沢光治良)
헌법 조문이 공개적으로 문제라 여겨질 때는, 국가에 불행한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전조인 것 같다. 메이지 헌법의 경우도 그랬다. 메이지 헌법의 경우, 1조와 5조 1의 천황과 천황대권(天皇大權) 2에 관한 내용이 공개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권력을 가진 군에서 전쟁이 편리하도록 조문을 곡해하려 애쓴 일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3
나는 다이쇼 9년에 도쿄대학에서 헌법 강의를 들었다. 도쿄 대학의 헌법 강의는 미노베 교수와 우에스기 교수 4가 맡고 있었다. 미노베 교수는 천황기관설(天皇機関説) 5에 불과한 강의였지만, 우에스기 교수는 천황중심설(?) 6에 가까운 강의였다. 학생들은 어느 강의를 선택해도 상관 없었다만, 미노베 교수의 교실 쪽이 언제나 만원이었다. 미노베 교수는 두뇌가 명석하고 풍모로 보아 냉엄하며, 강의는 무미건조하고 시험은 어려운 것으로 유명했다. 반면, 우에스기 교수는 풍모가 훌륭하여 연기자처럼 미남이고, 항상 일본복(和服)을 입고 7 강의도 재미있고 시험은 쉬우며 우(優)를 받기도 쉬웠다. 그러나 우(優)의 개수에 취직이 좌우되었음에도, 다들 미노베 교수의 강의를 택했다. 이는 미노베 교수의 강의야말로 진정한 헌법 강의라고 생각했고, 우에스기 교수의 그것은 강담(講談)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8
그러나 그 당시에는 대학에서 어떤 식으로 헌법을 강의하든, 이는 학내의 일로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평범한 국민들은 헌법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는 국민이 가장 행복한 때이다. 헌법은 국가라는 살아있는 조직체의 중추와 같아, 건강할 때는 우리가 두뇌와 심장 등의 존재를 잊고 살 수 있듯, 국가가 건강할 때는 헌법도 잊을 수 있다. 그런데 권력자가 국민의 복지나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권력을 쥐락펴락하려 할 때, 국가도 병들게 되고 헌법의 존재가 궁금해져 그 조문을 바꾸고 싶어지는 법이다.
태평양 전쟁의 전후는 슬픈 체험이었다. 그때는 흠정헌법(欽定憲法)이 곧 가장 훌륭한 헌법이었기 때문에, 개정을 운운하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점이 많아 말조차 할 수 없었고, 이에 조문의 해석은 권력자의 입맛에 맞추는데 안달이 나있었다. 천황은 창조주와 같은 신으로 치켜세워지며, 병에 놀라 허둥대는 미개인이 신에게 낫기를 비는 것처럼, 도쿄대에서 강의를 하는데도 카케이 교수와 같이 카시와데(柏手) 9를 올리고 국체명징(國體明徵) 10의 주문 같은 글귀를 설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고 누구라도 알고 있다. 11
오늘날 평화헌법 개정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역시 국가라는 살아있는 조직체가 건강을 해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국민의 복지와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권력자는 ‘이번에는 메이지 헌법이 아니니까.’라며 개정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 오히려 평화헌법은 점령군에게 강요당한 헌법이라고 말하며, 국민의 독립감정에 기대어 개정 쪽으로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12
우리 국민은 평화헌법이 점령군으로부터 강요를 받았는지 어떤지 모른다. 단지, 태평양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패전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여러 의문을 갖고 정부와 군을 볼 수 있었다. 패전 후 헌법 개정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국민은 모두 메이지 헌법은 개정해야 한다고 불행과 고뇌 속에서 절규하는 기분이었다. 그 무렵 농촌이나 산촌이나 어촌에도 문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해 건강이 좋지 않고 외출이 귀찮은 나도 어쩔 수 없이 지방에 끌려나갔지만, 어떤 주제로 이야기 해도 강연 후나 좌담회에는 정해진 듯 천황제에 대해 힐문당하듯이 의견을 들었던 것이다. 기나긴 불행한 전쟁으로 국민의 사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화헌법이 선포되었을 때 국민들은 모두 기뻐했다.
국민에게는 헌법이 점령군에게서 강요된 것인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평화헌법이야말로 고뇌 속에서 기다려온 것임을 기뻐했다. 헌법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평화헌법에 의해 비로소 국민이 해방되고 인권이 존중되며, 전쟁이 포기된 것만을 알고 기뻐했다. 헌법이 선포되었을 무렵, PTA의 모임 등에서, 안부인들이 이런 헌법이 생긴 것이야말로 전쟁 중에 고통받은 보람이 있었다는 말을 한 것을 잊을 수 없다. 아들이 전사한 부모들에게는 이로써 아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아니게 된 것이다. 고인이 이제야 성불할 수 있겠다고 말하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농어촌 중학생과 고교생이 가슴을 펴고 평화의 전사(戰士)가 되리라는 희망에 얼굴을 빛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그 헌법의 밑에서, 국민은 그 길을 따라 노력하며 살아왔다. 13
메이지 헌법이 선포됐을 때도, 그 헌법이 국민에 의해 제정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마찬가지로 반갑게 맞아주고 따랐다. 일본 국민은 자신의 손으로 헌법을 제정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평화헌법의 경우,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자가 선택한 헌법을 자국의 헌법으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와서 미국으로부터 강요받은 헌법이라는 식의 잠꼬대 같은 말을 들어도 당황스러울 뿐이다. 특히, 그 헌법이 국민을 위해서는 메이지 헌법보다 훨씬 지킬 만한 이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헌법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정독해보는 것이 좋다. 이보다 더 훌륭한 헌법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납득할 수 있다. 너무나도 훌륭해서 정치인들은 그 노력의 부족을 부끄러이 느낄 것이다.
그런데 평화헌법의 개정에 대해 문제가 되는 것은 재군비와의 연관성으로 우선 제9조를 들 수 있다. 개정론자들은 군대 문단속론 14을 시작으로 독립국가에 군비가 필요한 이유를 설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에서도 막강한 군대를 갖고 독립을 지키고 있음을 설파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고 있다. 전쟁을 포기한 일본의 헌법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하지만, 일본 정치인들은 이 훌륭한 헌법의 이상을 국외로 향해서 선양하고, 그 이상을 위해서 왜 싸우지 않는 것일까, 왜 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 노력을 함으로써 문단속 걱정도 없어질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15
스위스에 강력한 군대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스위스 군대는 일본 정치인들이 말하는 군대와는 다른 것 같다. 스위스는 일본인의 상상을 초월한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건강하고, 실업자도 없고, 노동쟁의도 없고, 감옥에 죄수도 없고, 신문의 사회면 기사가 없는 행복한 나라다. 빈부의 차이가 없고, 도시도 전원도 그 풍경처럼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데카당스가 둥지를 틀 여지가 없을 정도로 거국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 세상의 제일 가는 천국일 것이다. 이런 나라라면 국민은 그 나라를 침범하고자 하는 것이 있을 경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몸을 바쳐서 나라를 지키려 한다. 16
여학생도 호텔보이도 건강을 위해 휴일에는 등산을 하지만, 일요일에는 등산전차에 아이를 동반한 군인들도 가득하다. 그러나 이 군인들을 보고 일본식의 군인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군복을 입은 시민들로, 여학생이나 호텔 보이와 같이 건강을 위해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17
일본의 정치인들이, 일본을 헌법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행복한 복지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군비에 애쓰지 않더라도, 국민은 나라를 지키며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행태는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 로잔 세계펜 대회 레만 호숫가 시옹 성 18에서의 마지막 만찬 때, 스위스 문부대신이 읊은 축사 한 구절을 떠올린다. 19
지금 세계에 어두운 전운이 감돌고 있지만,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스위스도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그때는 원자폭탄에 의해 고성도 날아가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문학자들의 가슴에 역사적 고성을 표해두고 싶어 불편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고성에서 만찬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진지하게 평화를 희구한다면, 반드시 전쟁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증거로 스위스를 봐주길 바랍니다. 스위스는 세 개의 국어를 갖고, 이해(利害)가 어긋나는 세 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평화로운 국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십자가를 국기로 삼아 세 민족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십자가를 감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마음을 갖기만 한다면, 전 세계가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복지와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귀국하셔서 나라의 정치인과 국민에게 전하고 설득할 수 있기를…
평화헌법은 그 십자가를 세계에 솔선하여 짊어지는 일을 선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 제 104호 1954(쇼와29)년 8월
「世界」第104号 1954(昭和29)年8月
- 제1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본문으로]
- 제5조 천황은 제국의회의 협찬을 거쳐 입법권을 행한다. [본문으로]
- 천황의 통치권을 비롯하여 천황이 행사할 수 있는 특권 [본문으로]
- 일본의 헌법학자인 미노베 다츠키치(美濃部達吉), 천황기관설(天皇機関説)을 주장했으며, 군부 파시즘의 대두로 인해 군부와 우익 세력에 의해 불경죄로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 일본의 헌법학자인 우에스기 신키치(上杉 愼吉), 천황기관설과 반대되는 천황중심설을 주장했으며, 일제의 국가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본문으로]
- 국가를 하나의 법인으로 보고 통치권이 법인에 있으며 천황은 국가의 최고 기관에 불과하며 다른 기관들과 협력하여 도움을 얻어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학설. 국가 주권의 소재가 군주, 국민이 아닌 국가 그 자체에 있다고 보는 것이 특징이다. 다이쇼 중기부터 쇼와 초기까지는 헌법학설 중 중심에 있었으나, 군부 파시즘의 대두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고 우에스기 신키치의 천황중심설에 밀려났다. 2차세계 대전 이후 개정된 헌법인 평화 헌법에서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명시하여 천황기관설 역시 막을 내리게 된다. [본문으로]
- 대일본 제국 헌법에 있어서, 주권이 천황에게 존재한다는 해석이자 학설. 천황주체설과 비슷한 개념으로, 세리자와 코지로는 천황중심설(天皇中心説)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본문으로]
- 우에스기 신키치는 승마복을 입고 강단에 서 학생들이 보이콧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본문으로]
- "군주가 제정하여 하사한 헌법"이라는 뜻으로 메이지 헌법을 의미 [본문으로]
- 신사에 참배할 때 양손을 마주쳐 소리를 내는 것. [본문으로]
- "일본의 국체는 곧 일본 천황이 통치하는 것" 이라는 뜻. 국체명징성명 이후 미노베 다츠키치의 천황기관설은 힘을 잃고 천황중심의 파시즘이 대두되었다. [본문으로]
- 여기서는 일본의 항복서약과 헌법 개정을 받아낸 미국과 미군정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 Parent-Teacher Association의 약자. 미군정에 의해 만들어진 기관으로, 한국으로 치면 녹색어머니회와 비슷하다. [본문으로]
- ①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초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바라고 추구하며,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 ②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 문단속을 해야 안심이 되고, 문을 열어 놓으면 언제든 침입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군대를 보유해야한다는 논리 [본문으로]
- Décadence. "퇴폐"의 불어 표현. [본문으로]
- 登山電車. 케이블카처럼 등산객을 위해 설치한 이동수단. 전차(戰車, 탱크) 아님. [본문으로]
- 1951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국제 문학인 대회. 국제펜클럽(International PEN)에 소속된 국가와 그의 대표단이 참석하며, 1951년에는 당시 일본펜클럽의 회원이던 세리자와 코지로와 이시카와 다츠조가 참석했다. 훗날 1965년에 세리자와 코지로는 제5대 일본펜클럽 회장직을 맡게 되며, 1974년에 나카무라 미츠오에게 회장직을 일임한다. 여담으로 한국의 경우, 1954년에 한국 국제펜클럽이 창립되었다. [본문으로]
- 시옹 성(城). 제네바 호수에 위치한 섬에 지어진 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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