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 등장하는 니지욘 컷은 실제 대사와 무관합니다. 내한뽕이 덜 빠져서 글의 두서가 없습니다.
Ⅰ. 3년을 기다렸소, 3년을
처음 아구퐁, 미유땅, 슈슈(이하 퐁땅슈)의 내한이 결정됐을 때, "럽라 단독 이벤트도 아니고, 13인이 다같이 오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라이브도 없을 것이 분명한 이런 행사를 퐁땅슈 셋만 보자고 가겠어?" 라고 생각했다. 0.5초 정도. 눈 떠보니까 이미 AGF 티켓을 산 후였다. 물품보관소의 지옥도고 뭐고 간에, 퐁땅슈 온다는데 뭐가 중요함?
티켓을 산 뒤에 바로 휴가 일정부터 새로 짰다. 원래 미아 생일에 맞춰서 하루만 쓰려던 것을 12월 2일~12월 6일까지로 바꿨다. 중간에 주말이 있으니 3일을 쓴 거다. 연차 소멸 직전인데 열흘이 쌓여 있어서 동료건 부장님이건 다들 아무 말 없이 잘 쉬다오라 그랬다. 다들 감사합니다. 정작 쉬는 게 아니라, 평소보다 개빡세게 움직이는 거였지만 말이다.
Ⅱ. 너네 왜 그래
AGF 라인업이 공개될수록, 회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몰루겜이든 방도리든 자기들 쪽이 바쁘니 퐁땅슈 레드 스테이지는 조금 여유롭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슈슈의 1일 점장 소식이 뜨니까 갤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갑자기 다들 철야를 하겠다느니, 첫차를 타고 간다느니, 그런 말들을 했다.
"에이, 물갤 상주 인구가 600명 정도인데. 컁슈카에 리에라 3rd로 사람 빠지면 600석 안에는 들겠지 ㅋㅋ" 하고 낙관을 하고 있었는데, 웬걸 월요일부터 진짜 작정하고 덤비려는 물붕이들이 보였다. 그래서 급하게 킨텍스 근처에 숙소를 잡고, 토요일 첫차로 서울에 가려던 걸 금요일 오후에 미리 올라가는 걸로 바꿨다. 미리 휴가를 빼서 다행이었다.
Ⅲ. 빠르게 정리한 집 ~ 킨텍스 행적
금요일 13시, ITX를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
금요일 16시, (서울에 발령받아 12월부터 따로 살게 된) 룸메 놈을 만나 함께 숙소로 이동.
금요일 18시, 숙소에서 BBQ 먹고 마지막 계획 수립 시작.
일단 첫차조 보다 먼저 도착하는 걸 목표로 잡았고, 4시에 일어나 줄을 서기로 합의했다. 취침은 럽지컬 방송이 끝나는대로 자기로 했고, 대략 금요일 21시 30분에 잠들었다.
Ⅳ. 600컷도 서러운데, 대기라도 좀 잘 해주지
4시에 일어나 갤을 보니 600명이 간당간당하다는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부랴부랴 정리하고 바로 킨텍스로 향했다. 눈이 쌓여 있어 길은 미끄러웠지만, 눈 덕분에 날씨는 오히려 따뜻했다. 2전시장에 도착해 문을 열자, 이미 정면에 무슨 피난민들이 겹겹이 앉아 있었다.
퐁땅슈 보러 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불안이 엄습했다. 늙고 병들어서 스탠딩은 진짜 무리라고 생각했고, 슈슈 1일점장은 애초에 일요일에 일산에 있지 못 해서 포기한 상황이라 어찌되었건 레드 스테이지 600명만 들기를 기도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나지만, 7시 반 쯤에 티켓을 확인받고 팔찌를 받아 입장 대기줄에 합류했다. 처음 킨텍스에 도착했을 때, 안쪽의 사람 수를 파악할 수 없어서 600명 저울질을 계속 하고 있었는데, 입장 대기줄에 서면서 앞서 온 사람들 수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와... 난 이 나라에 오타쿠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화단을 끼고 빙 도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600명 컷을 포기했다. 그냥 스탠딩 최전열이라도 설 수 있으면 했다.
그런데 사실, 이 시점에는 별 생각이 안 들었다. 어느 정도 각오도 했고, 단순히 몸이 너무 지친 상태라 운영을 개떡같이 하는 것에 화가 나 있었다. 무의미한 줄 당김이라도 하지 말든지...
Ⅴ. 입장 ~ 스테이지 전
10시 25분 쯤에 입장했다. 입장하자마자 레드 스테이지로 갔는데, 놀랍게도 좌석권을 받을 수 있었다. 400번 초반대. in600도 기뻤는데 좌석 위치도 무대 정면이라 최고였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이후에는 애플 부스로 가서 사각뱃지 20개와 달력 2개를 샀다. 뱃지는 올컴플+아즈나+리버스+DD 였는데, 스테이지 전에 중복인 8개는 사람들이랑 교환해줬다. 결과적으로 시즈쿠와 미아가 하나씩 늘고, 세츠나와 시오리코가 사라졌다.
같이 온 룸메는 말딸 부스에서 놀다가, 레드 스테이지 직전에 내가 전화해서 합류했다. 룸메는 애플 부스에서 담요와 달력을, 피프에서 리버스 작소를 사왔다. 아 네소는 못 참지 ㅋㅋ
Ⅵ. 준비됐어, 물? 물론이지, 붕!
퐁땅슈는 실존함을 두 눈으로 증명했다. 와 진짜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셋 다 선녀가 틀림 없다. 나랑 같은 인간이 아니다. 와중에 퐁은 잘 먹고 다녔는지 볼이 사진보다 동글동글해서 너무 귀여웠다. 미유땅은 가만히 서있어도 특유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괜히 수령님이 아니다. 슈슈는 진짜 웬 사모예드가 튀어나왔다. 멤버들이 막내 느낌이라고, 애라고 얘기하던 게 빈말이 아니었다. 96년생이 아니라 06년생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사람이 진짜 첫눈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리에는 없었지만, 너무 편하게 언급되던 사가라. 슈슈와 마유치의 한복짤은 워낙 유명하니, 한 번쯤 언급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바로 나왔다. 같이 여행 왔던 슈슈보다 미유땅이 먼저 한국에 데려오겠다고 얘기해서 참 재밌었다. 다같이 한 번 왔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마유치가 야바이야츠라고 불린 게 AGF에서 제일 재밌었다.
라이브는 없겠지만, 블은 챙겨야지. 챙기길 진짜 잘 했다. 설마 애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평소에 자주 듣는 노래로, 회장에서 콜을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예상을 못 했을 뿐, 도키런이 나오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블을 고쳐 잡고 바로 콜을 넣었다.
와, 진짜. 19내한 "단스나우!" 때도 느꼈지만, 우리 물붕이들은 진짜다. "세노-!!" 에서 무슨 RPG 게임 공대 광역 버프 걸린 것처럼 각성해서 그렇게 큰 소리로 콜 넣을 줄은 몰랐다. 퐁땅슈도 놀라고, MC 형도 놀라고, 통역사 분도 놀라고. 아직도, 깜짝 놀란 퐁과 감탄하던 미유땅, 활짝활짝 웃으며 박수치던 슈슈가 눈에 선하다. 진짜 니들이 최고다 물붕이들아.
스페셜 코너, 크리스마스 세리후. 다른 것보다도 카린 목소리가 바로바로 나오는 미유땅이 젤 신기했다. 그리고 슈슈가 영어를 참 쉬운 말들만 골라서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사인 포스터는 당첨은 꿈도 꾸지 않았고, 그냥 번호표 뽑는 퐁땅슈와 이후에 날아온 "축하해" 면 충분했다. 하코오시지만, 어쨌든 카린오시인 입장에서 카린이 한국말을 하는 건, 그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일이지 않겠나. 퐁이 계속 "네-" 하고 대답하는 것도 귀여웠고, 슈슈가 한국말을 굉장히 자주, 게다가 "내 마음이 두근두근" 같은 뽀짝한 말을 골라서 하니 비명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아무튼, 스테이지는 하나하나 다 할 말이 있을만큼 최고였다. 아니 어떻게 이불 펴고 방석 놓는 것만으로도 최고일 수 있냐. 이걸 포착해서 츳코미 걸어주는 MC 형님도 GOAT고, 물붕이들이 다 알아 듣는 거 아시고 크리스마스 세리후 통역 생략하신 통역사 누님도 GOAT고, 끝없는 환호와 박수와 콜과 열정으로 퐁땅슈를 놀라게 한 물붕이들도 GOAT 였다.
Ⅶ. 다음 내한은 언제냐
레드 스테이지 끝나자마자 킨텍스를 나와서 합정으로 갔다. 그리고 룸메랑 밥 먹고, 15시 30분 KTX를 타고 대전으로 간 뒤, 환승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대충 19시 40분 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대략 16시간을 깨어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대기 시간으로 보냈지만, 최근 3년간 이렇게 고양감을 느낀 적이 잘 없었다. 니지 5th를 온라인 뷰잉으로 봤을 때 정도려나.
안 그런 물붕이가 없겠지만, 11월에 토모리 소식을 접한 뒤로 반쯤 시체처럼 지냈었다. 열정이 식었다거나, 지쳤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내가 이 컨텐츠를 즐기면서 마냥 기쁜 마음으로만 즐길 수가 없게 된 그런 마음이었다. 만약, 이 상태가 지속됐다면 정말로 (상상도 안 해봤지만) 럽덕질을 그만두게 되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이번 내한 덕분에, 퐁땅슈 덕분에, 다시 정신차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쭉 좋아할 힘을 얻었다. 모든 것을 지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번 내한을 기점으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한달, 제대로 못 들었던 아즈나 노래도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고, 3일과 4일에 있던 리에라 3rd 미야기 공연도 늦게나마 아카이브로 돌려봤다. 우울에 빠져 있던 11월에 한 번도 라이브 영상을 틀어본 적 없던 만큼, 이 재미와 충만함은 그리웠고 또 새로웠다. 뭐가 되었든, 시간은 흐르고 앞으로 나아갈 테니. 각자가 이 마음 그대로 어디에 있든 좋아해주면 되는 일이 아닐까.
물론 아직 니지 5th를 다시 보긴 힘들 것 같다. 내한을 한 번 더 하든, 아니면 4월이 되었을 때는 조금 누그러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다음 내한은 언제냐고, 아ㅋㅋ
다른 멤버들은 몰라도, 낫쨩과 츙룽은 꼭 왔으면 좋겠다. 오기로 했던 사람들은 꼭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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