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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모음/기타 후기 모음

[라이브] 윤하 GROWTH THEORY 후기

by 양털책갈피 2024. 11. 9.

※ 럽라 얘기 2%


0 . Intro


PART 1  . GROWTH THEORY

① 맹그로브

숲이 대지를 살리고, 숲은 대지로부터 뻗어나온다.

 

7집 모든 곡들이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기에 이번 콘서트의 관건은 이 거대한 스케일을 어떻게 살리느냐였다. 특히 7집 첫 번째 트랙으로서 맹그로브가 가진 역할과 위상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시작을 너무나도 잘 끊어줬다. 왈츠풍의 느긋하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사운드로 시작하여 터져나오는 후렴구. 웅장한 스케일들의 7집 곡을 걱정하지 말라는 듯 보란 듯이 온전히 그 크기를 담아낸다.

 

특히나 시작부터 보통 연출이 아님을 보여줬다. 얇은 LED 조명이 위에서부터 내려와서 빛을 밑으로 향하다 폭발적인 후렴구에서 빛이 치고올라가며 위쪽의 거대한 전광판의 나무로 이어지는 연출은 이번 콘서트가 ‘보는’ 콘서트임을 실감케 했다. 맹그로브 숲은 물에서부터 비롯하지만, 숲 그자체가 땅으로 물을 흘려보내며 수많은 생명을 살게 한다. 당연히 땅과 생명은 다시 숲을 살린다. 그 수직적 생동감을 조명 연출로 표현해낸 것, 심지어 그것이 첫 번째 무대일 때 기대감은 극에 달한다.


② 죽음의 나선

락윤에 연출 한스푼, FOCUS.

 

개미들이 페로몬 신호 교란으로 인해 나선을 그리며 빙빙 돌다가 죽는 앤트밀을 의미하는 죽음의 나선. 어딘가에서는 주식에 물린 개미들을 의미한다는 밈도 있지만 아무튼. 살벌한 제목과 다르게 정통 락이다. 슈퍼소닉에 버금갈정도로 하드한 사운드,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경쾌한 뜀박질은 이 곡은 ‘락윤’ 플레이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심장을 울리는 락사운드의 하이라이트는 정적 속에서 울려퍼지는 “FOCUS.”. 무대 중앙으로 달려나와 나지막히 외치는 한 마디가 죽음의 나선을 끊어내는 자유의지를 이미지로 구현한다.

 

특히나 인상깊었던 연출은 360도 무대를 한바퀴 달리는 시작부 연출이다. 단순히 락윤으로서, 하드한 락이니까 달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FOCUS 파트에서 굳이 무대 중앙(원의 중심)으로 와서 외친 것으로 볼 때 의도된 연출이었다. 직접 몸으로 달리면서 죽음의 나선을 표현하고 그 나선에서 벗어나 외치는 것을 통해서 곡이 가진 메시지가 시청각적으로 완성된다.


③ 퀘이사

뽀짝뽀짝 피아노락, 그런데 출항을 곁들인

 

콘서트를 앞두고 7집을 쫙 복습하면서 든 생각. ― 케이프혼 은화 때 배가 나오는 연출이 있지 않을까? 솔직히 아쿠아쉽을 봐서 한 생각이긴 하지만 뭔가 윤하라면 이번 콘서트 때 이정도 연출은 하지 않을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될 때, 감동은 두 배가 된다. 진짜로 돛단배가 뜰줄은 몰랐지. 스케일은 아쿠아쉽보다 작을지 몰라도 국내에서 이런 연출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누가 있을까. 뽀짝뽀짝한 사운드로 풀어내는 재치 넘치는 보컬과 앙증맞은 돛단배. 더 큰 연출을 할 수 있는 가수는 있어도 이런 연출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는 고윤하가 유일하다.

 

그리고 사실상 이번 콘서트 유일한 피아노락이었다. 피아노락도 여러 계층이 있는데 퀘이사는 아주 뽀짝하고 귀여운 축에 속한다. 그와중에도 우주적 사운드를 집어 넣은게 참 마니아틱하다. 퀘이사라는 천체는 어딘가 멀고, 어둡고, 차가운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소재로 이런 사운드를 뽑아냈다는게 경이롭고 신기하다. 도대체 퀘이사의 어딜 보고 뽀짝한 항해의 이미지를 잡아낸거지?


④ 케이프혼

이게 도쿄돔이야 KSPO돔이야

 

배가 뜬 이상 여기는 사실상 도쿄돔이다. 퀘이사에서 배가 떠버려서 놓쳤는데 진짜 항해는 케이프혼부터다. 배를 띄웠으면 조타수도 있고 선원도 있어야지. 마침 90도 돌출무대 바로 앞이어서 안무팀이 대기 중인 걸 봐서 ‘오, 뭔가 온다.’ 했는데 진짜로 깃발 펄럭이면서 춤출 줄은 몰랐지. 깃발 펄럭이는데 아쿠아 윈디 생각도 나고, 배 보니까 포쓰 생각도 나고. 내 앞의 윤붕이는 쌍윤블 들고 흔들고 있고.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가본 윤콘 중 가장 도쿄돔스러운 무대였다.

 

곡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면, 대항해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항해적 사운드가 희망봉을 돌아나서는 선원의 기분을 내게한다. 실제로 케이프혼 직전까지는 굉장히 험한 항로이다. 케이프혼에 도달해 그곳을 통과하는 순간 악천후가 사라지고 평온한 바다가 도래한다. 웅장한 스케일로 외치는 ‘Back off, 돛을 올려라’라는 가사는 ‘전래 없던 도전’을 성공하고 희망을 마주한 인간의 쾌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은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니까

 

배를 띄우든 안 띄우든 무조건 세트로 나올거라 생각한 케이프혼-은화 듀오. 연어 치어들이 바다로 나가기 전에 은빛을 띄는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인 ‘은화(銀化)’처럼 도전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이다. 케이프혼과 항해적 사운드를 공유하지만, 케이프혼이 도전을 성공한 선원의 벅차오름과 다음 도전을 위한 포부를 노래한다면 은화는 상냥한 보컬을 통해 도전을 위해 한걸음 내딛는 이들을 응원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 도전하는 사람은 찬란하고, 그 찬란함은 은빛처럼 빛난다는 것이 곡에서 드러난다.

 

은화가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것이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니까’라는 가사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저서인 ‘부분과 전체’, 생물학의 최종 목표인 ‘생명의 창발성’,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가사이다.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양자역학을 완성시킨 슈뢰딩거(고양이 그 양반 맞다.)가 말년에는 물리학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한 것을 보면 대가들의 사고는 비슷한가보다. 부분이 만나 그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전체를 만들어내는 창발성, 과학적이건 예술적이건 그 창발성은 누군가의 목표가 되나 보다.


로켓방정식의 저주

착실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굳이 설명을 수식으로 하진 않겠다만 치올코프스키의 로켓 방정식은 로켓이 나아가기 위한 조건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로켓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료를 실어야하지만, 연료를 실으면 늘어난 질량만큼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로켓방정식의 저주이다. (사실은 반대 의미이긴하다. 가벼워야 잘 갈 수 있지만, 잘 가기 위해서는 연료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본인 멋대로 뒤집어 해석했다.)

 

미분방정식이라는 수학적 기술이 없더라도 경험적으로 뭔가를 더 가지려하면 할수록 무거워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인생사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법이다. 누군가 이렇게 해서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 이걸로 성공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심란해지기 마련이다. 인생에서 지름길을 원하고 더 편한길로 빠르게 가길 원하는 건 당연한 욕망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로켓방정식의 저주는 살벌한 제목과 다르게 차근차근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인간 찬가다. 결국 허상이 아닌 ‘차근차근’ 걸어가는 길을 통해서 자신만의 ‘고요한 바다’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⑦ 태양물고기 

(개)복치더윤

 

개복치를 언어화(?)한 태양물고기. 강렬한 기타 인트로 때문에 라이브 전까지는 가장 기대한던 곡이었다.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다른 곡들이 워낙 대단해서 정작 태양물고기가 묻혀버렸다. 물론 태양물고기도 가지고 있는 메시지가 있고 음악적 연출이 대단하긴 했는데 시청각적 연출을 360도로 동원한 다른 곡들에 비해서는 그 임팩트가 조금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다른 사람들 후기를 보다가 발견한 표현, 복치더윤. 태양물고기는 이게 맞다. 사운드는 6집의 연장선이지만 어딘가 뽀짝하면서도 놓치지 않는 락사운드. 봇치도 가사로는 냉소적으로 쏴대도 결국 밴드를 하지 않았던가. 혼자 유유히 떠다니면서도 ‘네가 필요해’라고 외치는 순간에 외로움을 마주하며 그 해소를 도모한다.


포인트니모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찾은 가장 따스한 온기

 

포인트니모는 뭐라고 평가하기가 조심스럽다. 포인트니모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가치가 너무 높아서 언급하는 것조차 어렵다. 사건의 지평선이 교과서에 실렸을 때, 사건의 지평선의 문학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순수 한국어 가사에 대한 예찬이었다. 최근 유독 순한국어 가사에 대해 고평가하는 흐름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한국어라고 해서 다 문학적인 것도 아니고 한국어로서의 가치를 가진 것도 아니다.

 

사건의 지평선이 정말 높게 평가 받은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감정의 함축적인 표현이다. 포인트니모는 그런 측면에서 사건의 지평선의 완벽한 계승자이다. 순한국어 가사를 넘어서서 철학적인 고찰을 하게 만들면서도 함축적이고 그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르고 고른 어휘가 문학적 가치를 한층 더 한다.


⑨ 코리올리 힘

이토록 허무하고 냉소적인 전향력이라니

 

코리올리 힘은 유독 5집 Rescue가 떠오르는 곡이다. 트렌디한 사운드를 구사하면서 곡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어딘가 허무하고 냉소적이다. 그래서 윤하의 노래들 중에서는 다소 이질적이다. 코리올리 힘은 그 이질성을 최소화하면서 트렌디함과 니힐함을 모두 잡았다. 도대체 전향력으로 이런 창작적 발상을 하는 건 뭐지?


⑩ 라이프 리뷰

가장 위대한 사랑, 가장 위대한 노래

 

2일차 콘서트에서 곡 시작 전에 라이프 리뷰가 가진 의미와 배경을 이야기했다. 부모님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표현한 곡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 곡이 가진 의미가 오롯이 이해가 되었다.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곡이 김진호의 가족사진일 텐데 갈드컵 각오하고 가족사진보다 한 차원 높은 곡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족사진은 직설적으로 부모님에 대해 올리는 자식의 노래인데 라이프 리뷰는 너무나도 시적인 언어로 부모님의 사랑과 그에 대한 자식의 예찬을 노래한다.

 

곡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벅차오르는 리듬감을 사용하면서 후렴의 지르는 고음이 참 적절한 곡이다. 음원으로 들을 때 간혹 ‘아 이거 라이브로 들으면 훨씬 더 좋겠다.’라는 곡들이 있는데 라이프 리뷰가 적중했다. 음원으로도 좋았지만 라이브에서 들으니 ‘등대가 되어 반짝일 때 그대를 바라보고 싶어.’라는 가사에서 이 노래를 통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완전히 전해졌다. 이런 주제를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라이프 리뷰는 7집 곡 중 완벽한 곡이다.


구름의 그림자

가려지더라도 가릴 수 없는 빛

 

5집도 그렇고 6집도 그렇고 윤하의 정규 앨범에는 차갑고 무거운 노래가 꼭 포함이 된다. 이번 7집에서는 구름의 그림자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묵직하게 떨어지는 사운드, 차가운 보컬, 반복적이면서도 늘어지는 박자감이 7집에서의 구름의 그림자만이 가지는 위상을 형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이 지닌 메시지는 따스하다. 차가운 사운드에 담긴 상냥한 메시지는 이 곡이 역설적인 미를 고도로 설계했음을 보여준다.

 

연출적인 측면에서는 흑백 화면을 쓴 것과 관악기 사운드가 인상깊었다. 흑백화면을 통해서 곡이 지는 가려져 어두운 이미지를 형상화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컬이 뚫고 나옴으로써 상기한 역설적인 미를 시청각적으로 구현했다. 관악기 사운드는 윤하 본인도 MC로 언급했던 것처럼 관악기(윤하는 피리라고 얘기했다.)가 아레나에서 울려퍼지는 공간감과 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곡이었다. 흘러가는 구름을 표현하는 듯한 관악기의 사운드는 곡이 지닌 서정성을 극대화 한다.


새녘바람

락윤의 새 지평

 

윤하의 팬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락윤’과 ‘발라드윤’이다. 락을 좋아하는 사람과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새녘바람은 그 둘을 통합해버렸다. 발라드적인 사운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곡의 진행과 전반적인 사운드는 벅차오르는 락에 해당한다. 락윤파와 발라드윤파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를 새녘바람으로 구현해냈다. 사운드를 쓰는 측면에서 락윤에 해당하는 곡이지만, 그러면서도 발라드적인 면모를 채워놨다는 점에서 락윤의 새로운 성공적 시도를 보여줬다 생각한다.

 

딱 하나 아쉬웠던 것은 3일차에 슬로건 드는 이벤트를 했는데 공식측의 찐빠인지 화면에 슬로건 드는 타이밍이 안 나와서 우물쭈물하다가 놓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단단러들이 안 알려줘도 잘 들어서 윤하도 보긴 했다. 어찌되었건 놓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아쉬운 구석이었다.

 


PART2  . END THEORY, Supersonic and... 혜성

① Black hole

영원처럼 밝게, 안녕

 

현재 최애곡인 블랙홀이 나왔을 때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음원으로도 라이브로도 나를 미치게 하는 곡인데 이게 체조돔(예전 이름은 체조경기장, 현 이름은 KSPO돔이라서 체조돔이라고 부를거다.)에서 나오다니 정말 돌아버릴 것 같은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블랙홀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결말을 먼저 봐버린 이야기’라는 가사 때문이다. 부활의 ‘소나기’의 가사에서 느껴지는 그 애상감을 2020년대에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그리고 반복되는 후렴인 ‘I'll try to figure out who we are’에서 느껴지는 벅차오름이 있다. 곡의 소재와 별개로 자아에 대한 성찰은 음악에서 그야말로 치트키이다. 그런데 그 치트키를 기깔난 사운드로 구사를 하면 이건 정말 참을 수가 없다. 블랙홀이라는 대상을 통해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결국 최종 목표는 너와 나를 함께 엮은 ‘우리’가 무엇인지 논하는 것이다. 자아를 성찰하는 사람은 아름답기 마련인데 그 성찰을 하는 것은 ‘나’이지만 그 성찰의 대상에 ‘너’를 포함하는 것에서 감동을 받았다.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와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이번 콘서트는 ‘보는 맛’이 있는 콘서트로 기획했다고 한다. 그것이 잘 드러났던 무대가 블랙홀이다. 360도 전광판에서 윤하를 화면에 잡으면서 블랙홀 화면을 오버랩해서 표현한 것도 미쳤고, 무대에 조명을 블랙홀 모양으로 쏴준 것도 미쳤다. 시각적 연출을 이렇게까지 신경 써준 것이 참 감사하면서도 감동이다.


② No Limit

어...? 어?? 어!!!!!!!!!!!!!!

 

VCR 영상에서 거의 10년만에 부르는 곡이 있고 그 곡을 메탈릭하게 편곡해서 할거라는 말을 보고 도대체 무슨 곡일까 머리를 굴렸다. 세 글자 곡이어서 오디션, 딜리트를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나온 건 노리밋이었다. 전주의 기타 소리를 듣자마자 4집곡인건 알았는데 Rock Like Stars로 착각을 했었다. 드럼과 기타 소리가 좀 더 나오자 노리밋인 걸 알았다. 밴드 사운드로 더욱 메탈스럽게 편곡된 노리밋은 이걸 듣기위해 10년을 기다린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은 퀄리티였다. 묵직하면서도 치고 달려나가는 사운드와 경쾌하면서도 냉소적인 가사를 내뱉는 보컬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라이브였다.

 

그리고 노리밋의 하이라이트는 세션 소개였다. 중간에 간주부분에서 메가폰을 들길래 여기서 메가폰으로 부르려라 했더니 밴드 세션 소개를 했다. 기타도 두 명, 키보드도 두 명, 드럼과 베이스, 코러스, 멀티연주자(세션 소개때는 플루트를 연주했다.)까지 꽉꽉 채운 세션 소개는 연주자들의 차력쇼였다. 프로니까 정말 잘했는데 특히 압권인 것은 베이스였다. 베이스 연주만으로 관객들에게서 함성이 터져나올 정도였으면 말 다한 거 아닐까. 노리밋에 넣은 세션 소개는 락붕이들의 심장을 터뜨려버렸다.

 

그리고 세션 소개할 때 중앙 무대에서 둠칫둠칫하던거 다 봤다.


Rock Like Stars

락윤의 정수

 

최애곡은 바뀔지라도 최애앨범은 항상 4집인 사람으로서 Rock Like Stars(이하 락라스)가 매번 콘서트 때마다 나오는 게 참 좋다. 음원은 중간에 랩파트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콘서트에서 하면 호응도 좋고 정말 재밌는 곡이다. 본인도 재밌어하는 것 같고. 라이브에서는 랩파트에서 악기 연주를 좀 더 하는데 이게 또 락붕이 미치게 한다. 안그래도 묵직단단한 락인데 거기다 기타 한 큰술 더 말아주니 얼마나 좋은가.

 

개인적으로는 2일차 의상이 락스타스러운 의상이어서 락라스에 좀 더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3일차 앵콜 의상이 교복이어서 예쁘긴 한데 락라스가 보여줄 수 있는 월클락스타와는 안 어울리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살별

C/2024YH, 발견으로 태어날테니 – 순간의 목격

 

살별은 오타쿠로서 벅차오르는 곡이다. 곡 자체도 그런 분위기가 있긴한데 콜 넣는 관점에서 우리 쪽 향기가 매우 강하게 난다. 뭔가 콜 넣어야할 것 같은 느낌의 인트로를 지나면 나오는 ‘C/2024YH’ 콜은 살별의 정체성이다. 3일차 공연때는 체조 경기장 뚜껑 터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하라고 한적도 없는데 끝까지 다 외치는 ‘한 순간에 사라질 무력한 우주 먼지에는 세상에 새겨질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어’는 토도호시 콜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후렴 직전의 ‘뜨겁게 타오를 때에 네곁에 있을 때’는 우리 쪽 노래들에서 라스사비에서 넣는 콜들을 생각나게 한다.

 

개인적으로 첫 가사인 ‘발견으로 태어날테니’가 정말 철학적이면서 문학적인 가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관측하지 못했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그 대상은 존재하는 것일까? 더 깊은 철학적 고민과 논쟁 대신 살별에서는 이름을 붙이고 발견을 통해서 대상을 존재하게 한다. 김춘수의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대목이 떠오른다. 과학적 인식론을 이렇게 낭만적이면서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살별의 이 가사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붙이는 순간을 라이브에서 함께 경험할 수 있고 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콘서트장의 살별의 평가는 계속해서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혜성

혜성은 지지 않는다.

 

나온지 벌써 17년도 넘은 노래를 새삼 이제와서 뭐라 평가하는 게 민망하다. 언제부터인가 혜성에 붙어있는 캐치프레이즈인 ‘혜성은 지지 않는다.’는 처음에는 윤하를 혜성에 빗댄 표현같았는데 그냥 말 그대로 혜성이라는 곡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이 든다.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랑 받는,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불멸의 고전이라는 찬사로서 이와 같은 말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대학교 행사 때 응원단과 함께 혜성을 하는 걸 봤는데 응원단과 참 잘 어울린다고 느꼈었다. 이번 콘서트에서도 안무팀이 응원단 컨셉으로 안무를 하면서 무대를 만들었는데 혜성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잘 어우러졌다. 그런데 안무 중 일부가 묘하게 깽판 느낌이 드는 건 왜였을까.


오르트구름

진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마세요 – 오르트구름×2을 하고 난 직후

 

윤하 본인이 말하는 걸로 봤을 때 기타는 당연히 피아노만큼은 못 치는데다, 안 치면 금방 실력이 훅훅 떨어지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윤하는 기타치는 모습이 어울린다는 인식이 있다. 그 모습을 잔뜩 즐길 수 있던 게 오르트구름 활동 때였다. 이번에도 그래서 혹시 기타를 치면서 부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타는 없었지만 대신 격렬한 안무와 함께였다. 안무를 하면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이 살벌한 노래를 해내는 걸 보고 새삼 그 실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리고 3일차 콘서트 때 역대급 이벤트가 발생했다. 오르트구름을 할 때 떼창이라 해야되나 콜이라 해야되나 아무튼 호응도가 엄청났는데 끝나고 윤하가 MC에서 엄청 잘했다고 오늘 작곡가들도 왔는데 뿌듯하겠다면서 칭찬을 했었다. 그러면서 어제보다 더 컸다고 얘기를 하니 누군가가 ‘한 번 더!’라고 선동을 했더니 진짜로 한 번 더 해줬다! 처음에 한 번 더 콜 나왔을 때 뭔가 눈치가 진짜 한 번 더 해줄 거 같았는데 진짜로 한 번 더 즉석 앵콜을 해줄 줄은 몰랐지. 그리고 끝나고 정말 힘들어하면서 위의 멘트를 내뱉었다. 아마 본인도 죽을 뻔 하긴 했는데 뭔가 인생에서 얻어가는 게 있었던 것 같다.


26

저물지 않는 청춘의 이륙

 

마지막 곡을 신나는 곡으로 할 거라 해서 뭘 하려는 걸까 했는데 26이었다. 가사도 띄워주고 다같이 떼창하라고 판은 깔아줬는데 생각보다는 떼창 화력이 약했다. 근데 곡 난이도 생각해보면 떼창하기 어려우니까 안하는게 오히려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26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너는 늘 그렇게 예쁘길 바래’이다. 이번에 마지막 곡으로 하면서 돌출 무대 저 끝까지 가서 관객들을 향해서 인사를 하면서 이 가사를 부르는 데 그 풍경이 너무나도 예뻤다. 26이라는 곡은 떠나는 순간에 대한 노래지만 어딘가 떠나더라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곡이다. 콘서트가 끝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전, 서로 이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지금 이 즐거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 마음이 저 가사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PART3  . Encore

① Hope

가장 아름다운 앵콜

 

매 윤콘때마다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앵콜곡으로 자주 나오는 Hope. 그리고 매 콘서트마다 앵콜 대신에 Hope 후반부 떼창을 하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3일차 콘서트 때 성공했다. 처음에는 앵콜 소리가 많았는데 동, 남쪽 구역에서 Hope 떼창이 나오더니 결국 앵콜 대신 떼창으로 회장이 가득 찼다. 무반주로 1만명이 부르는 Hope는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방금전까지 라이브에 열광하던 그 분위기는 사라지고 어딘가 차분하면서도 진정된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에는 나름의 감동이 있었다. 윤하도 이걸 알고 있었는지 2일차와 다르게 3일차 Hope 때는 후반부에 마이크를 관객석으로 넘기고 떼창을 듣는 모습이었다.

앵콜 프로젝트도 성공하고 이게 윤콘이야 러브라이브야 ㅋㅋ


사건의 지평선

가장 아름다운 앵콜

 

개인적으로 사건의 지평선을 들으면 마음이 헛헛해지는게 있어서 그리 선호하진 않는데(그래서 굳이 평도 길게 안쓸거다.) 라이브에서는 단 한 순간 때문에 참 좋아하는 곡이다. 마지막 후렴에서 다같이 떼창을 시키는데 캐스트는 떼창을 듣고 모든 관객들이 같이 떼창을 하는 그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키레이’와 ‘카와이’와 ‘우츠쿠시이’가 다르듯이 아름답다는 차원이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이 곡만이 가진 메시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별 건 아니지만, 럽라를 아는 사람들끼리 사건의 지평선을 지칭할 땐 '이호라' 라고 한다. 그리고 얘기 나오면 100이면 100 토모리 얘기로 이어진다. 그 헛헛함이 아마 토모리 덕분이지 않을까.


나는 계획이 있다

그래, 댄스가수의 계획이 있었구나

 

더블 앵콜로 VCR이 나올 때 VCR에서 댄스 가수 운운하길래 솔직히 탓치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는 계획이 있다를 격한 댄스와 함께 부를줄은 상상도 못했다. 물론 그 댄스가 격하긴하지만 참 뽀짝뽀짝하다. 그런데 이게 또 곡의 분위기와 맞다. 이래저래 상상도 못한 조합인데 그게 또 잘 맞는게 어디까지가 계산일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댄스와 별개로 6집 곡 중 유독 저평가 당하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어려운 노래고 많은 스킬들을 요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언급이 없는 곡인데, 이번 라이브를 보고 다시 한 번 이 곡을 이렇게 해낼 수 있다라는 것에 감격했고 뿌듯했다. 아무리 봐도 제목을 너무 가볍게 지었다. 곡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도 참 좋고 음악적 난이도도 굉장히 높은데 제목 때문에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기특해

아유 기특해라

 

7집 리패키지 곡 중 뜬금없이 뮤지컬 넘버 같은 노래이다. 이번 콘서트 라인업들이 워낙 쟁쟁해서 그런지 완전히 까먹고 있다가 찐찐막곡으로 나왔을 때 아차 싶었다. 그래, 기특해를 아직 안했구나. 도대체 무슨 맥락에서 나온 곡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특하니 됐다. 88년 생이면 클템노페가 동갑인데 이렇게 뽀짝기특할 수 있다니.

 

이곡은 정말로 음원이 라이브의 십분의 일도 못된다. 캐스트 본인도 라이브로 임할 때 자세가 다른 것 같다. 라이브로 보니 음원은 심심하기 그지 없다. 라이브에서는 온 사방 무대를 돌아다니면서 뽀짝대면서 정말로 본인이 즐거워하며 기특해하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압권인 건 ‘이 느낌은 억만금을 줘도 못 사’이다. 음원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압도적인 파워는 순수 체급으로 찍어누르는 차력쇼다. 중간중간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리면서 힘을 주고는 긁어대는 보컬도 음원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도대체 라이브에서 이렇게 할거면 음원에서는 왜 그렇게 살살한거지?

 

아무튼 상상도 못한 찐찐막곡이었고 콘서트까지 온 팬들에게 ‘아유 우리 반려가수 기특해라’라는 생각이 드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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