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 오프닝 (태양물고기 / 은화)
① 태양물고기
어른이의 성장통
댄서들의 세트리스트 어레인지 퍼포먼스가 끝난 뒤, 청명한 대양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곡, 그것은 태양물고기였다. 체조경기장 입구부터 태양물고기가 전시되어 있고, 흩날리는 긴테 조각도 전부 태양물고기 모양인, 역시 이번 앵콜 콘서트의 테마로 낙점된 녀석은 맘보인 것 같다.
경쾌한 기타 사운드를 활용하는 곡임에도 서정성을 담아낸 분위기가 아주 독특하다. 인트로만 해도 야구장에서 들릴 것 같은 멜로디인데, 드럼 비트가 템포를 전환한 이후로는 나만이 아는 나의 연약함을 노래한다. "별일 아닐 거라 했지?" 라는 가사 안에 주제의식이 담겨 있어 후렴에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었고, 편곡도 편곡이고 스크린 연출도 연출이지만 역시 가사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보통 태양물고기처럼 내면의 불안을 주제로 한 대다수의 곡들은 이 불안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자기긍정으로 의식을 잇지 못한다. 허나, 태양물고기는 밝은 반주를 바탕으로 불안을 낙관으로 재해석한다.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까지는 아닌 것 같고, 우린 그냥 이렇게 태어났고 잘 살고 있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한때 러브송 가수의 이미지가 짙었던 윤하가 이제는 연인의 사랑보단 자기애로 사랑을 튼 게 아닐까. (사실 그렇게 된지 한참 되긴 했다.)
그리고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윤하의 곡답게 태양물고기 가사에는 영어가 없다.
② 은화
자기애의 다음 차례는 은화하는 우리
콘서트 직관 전에 가장 기대했던 무대가 은화였다. 블로그에 후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댄스 퍼포먼스까지 신경 써서 보게 되었고, 자타공인 댄스 가수인 윤하가 군무로 준비했던 곡이 은화이니, 실력 한 번 보자는 건방진 의도도 있었고, 순수하게 이 곡의 메세지에 반한 것도 있었다. 곡의 모티프가 연어들의 은화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온 것인데, 철학 좋아하는 샤케가 이걸 어떻게 그냥 넘기겠나.
앞서 태양물고기에서 윤하가 자기애를 노래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 자기애의 연장선이 은화의 메세지라고 본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라는 말은 공동체는 개개인의 특성을 모두 더한 것에서 더 나아가 공동체 그 자체가 갖는 고유한 성질이 있음을 말하는데, 이는 역으로 말하면 개인이 공동체에 속할 때 개인의 특성과 잠재력과는 하나도 관련 없는 성질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이 자신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거나 더 특수한 존재로 나아가고 싶다면 타인과 관계를 맺어 집단을 형성하라는 메세지가 된다.
이것이 삐뚤어지면 이데올로기가 되어 너, 나, 우리 아니면 다 배척하는 반인륜적인 특성을 갖겠다만, 이 전체의 흑화를 반박하기 위해 은화를 상위의 모티프로 가져온 것이다. 한 마리 치어에 불과한 연어들이 무리를 이루어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는 현상, 이것이 집단의 타락과 대비되는 집단의 은화다. 괜히 가사에 "둘이 하나보다는 훨씬 더 세니까" 라는 부분을 써넣은 게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 집단이 무어냐, 굳이 와글와글 모이는 집단이 될 필요는 없어보이고, 둘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자기애에서 타인을 향하는 사랑이라면, 모자랄 일은 없어보인다. 연인이든, 부부든, 부모자식이든. 애초에 은화라 함은 연어와 달빛만으로도 성립하는 개념이니, 인생을 유영하는 연어가 자신을 비추는 달빛을 만나는 것으로 충분히 은화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콜 넣는 부분, 음원으로 들었을 때는 "우린 부분의 합!" 을 적당히 꾸깃꾸깃 외치는 건 줄 알았는데,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뿌레 뿌레 하!" 라더라. 뭔 소린데 그게.
Ⅱ . 출항 (퀘이사 / 케이프혼)
① 퀘이사
내 우주에서 가장 밝은 그대에게
도쿄돔 아쿠아쉽만큼은 아니지만, 아무튼 윤하피셜 큰 배(벨트 터뜨린 그 배 아님)라고 자부하는 퀘이사호의 어원이 되어주는 퀘이사. 상쾌함과 파도 향기를 음성화한 뱃사람의 노래라는 인상인데, 대양의 이미지를 담은 이 노래에 어째서 천체 중 하나인 퀘이사라는 이름을 붙였을지, 짐작가는 바는 있지만 진의는 윤하만 알 것이다.
곡 구성의 재밌는 포인트라면 역시 윤하를 상징하는 피아노 사운드. 지금은 피아노록이란 말을 들으면 발작하는 본인과 그 팬덤이지만, 486으로 활약하던 당시만 해도 윤하 하면 피아노록이었다. 그때의 경쾌한 피아노 사운드를 배경으로 지금의 과학덕후 고윤하가 대양과 천체를 묶는 곡을 부른다니, 그때의 윤하를 아는 입장에선 무척이나 반가운 무대였다.
사실 퀘이사는 그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그게 정확히 어떤 천체인지는 몰랐다. 그래서 이번에 후기 쓰면서 사전을 찾아봤는데, 쉽게 말하면 "은하 중심부에 위치한 겁나 큰 블랙홀과 그 블랙홀이 형성하는 물질들의 소용돌이와 그 물질들에 의해 방출되는 거대한 에너지와 발광을 아우르는 영역" 을 의미하는 천체다. 아무튼 크고, 아무튼 밝고, 아무튼 강력한 녀석이다. 가사에서 "까만 하늘을 밝혀내는 중력의 힘" 이란 부분이 있는데, 여기가 퀘이사를 시적으로 풀어낸 부분이다. 우주를 밝히는 블랙홀의 빛, 이렇게 번역하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저 가사 바로 뒤에 붙는 "너와 꼭 닮았어" 인데, 가사를 연결해서 보면 "퀘이사는 너와 꼭 닮았어" 가 된다. 즉, 퀘이사를 대명사로 하여 퀘이사스러운 누군가에게 보내는 노래인 것이다. 그래서 신해철의 《그대에게》 와 같은 맥락의 곡이 아닐까 한다. 《그대에게》 의 그대가 사실은 음악을 의미하듯, 퀘이사의 퀘이사도 사실 윤하의 인생에서 가장 밝은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미다. 이번 콘서트 출항의 상징인 배에게도 퀘이사호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내 인생을 같이 살아가줄 파트너는 퀘이사라는 메세지를 은유하는 장치라고 본다.
하여, 가창자인 윤하의 퀘이사는 누구일지 무엇일지 알 길은 없다만, 결국 《그대에게》 처럼 청자는 그 자리에 적절한 내 우주의 가장 밝은 이를 넣어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끝으로 퀘이사에는 바다를 이미지한 고유의 청춘감이 있는데, 우리쪽의 미즈시부나 청춘윤곽과 조금 결이 다르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의 이미지라면, 퀘이사는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볼 때의 이미지다.
② 케이프 혼
닻을 올려라
서사적 사운드가 음정 하나하나에 담긴 케이프 혼.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케이프 혼은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항로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현대에 들어서도 쉽다고는 말 못할 거친 바다다. 그런 곳을 상대하려면 이 정도 사운드는 가져와야지.
이번에 처음으로 콘서트 직관을 해내면서 느낀 건 역시 직관에 필적할 전자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음원과 직캠 모두 현장의 그 전율을 담지 못 한다. 윤하가 한 음절 한 음절 각을 넣어 "Attention! 닻을 올려라" 하는데 피가 끓어오른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조승우의 고함을 들었을 때와 견줄 만하다.
캡팁 윤하가 주도하는 이 항해에서 콘서트 처음으로 강력한 결속과 일체감을 느꼈고, 흔히 말하는 직관뽕이 최대치를 찍는 첫 지점이 여기였다. 직캠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하나미치와 그 시작점에서 댄서들이 깃발을 휘두르는데 비슷한 연출을 봐왔다보니 아쿠아 생각도 많이 났고, 작곡과 편곡이 끝난 이 곡의 스케일을 키우기 위해 종합 무대 예술로서 정말 많은 연구를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윤하의 경례가 칼각인 거, 어우 멋있었다. 나이가 나이라 군필의 각이 나온다.
Ⅲ . 절망을 거슬러 (로켓방정식의 저주 / 죽음의 나선 / 코리올리 힘)
① 로켓방정식의 저주
노력이 아닌 희망을, 충고가 아닌 격려를 원하기에
로켓방정식의 저주, 중2병스러운 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이론이며, 일종의 역설이라고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가벼워야 멀리 가는데, 멀리 가려면 연료가 필요하고, 그 연료를 추가하면 무게가 늘어나 무거워지고, 그래서 다시 연료를 투입하고, 그럼 그 연료만큼 무게가 또 늘어나고… 그런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곡이다.
자기애를 노래하는 앞선 곡들과 비교하면 뒷맛이 좀 씁쓸한 곡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는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라는, 이상과 꿈에 다소 회의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사실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라" 라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이것이 흔히 노력론으로 이어져서 자기분수를 알고 노오력을 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곤 하며, 실제로 이 뜻으로 인용하는 사람이 절대다수다.
그러나 윤하가 전하는 메세지는 다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은 같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해준다. 일단 그거라도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희망을 보여주며 천천히 차근차근 가라고 토닥이는 것은 다른 행동이다. 윤하는 지금 처한 상황을 마주보고 괜히 로켓방정식의 저주에 빠져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가진 연료만으로 날아가면, 그 도착지에서 새로 충전하면 그만이다. 출발도 전에 머리에 불을 붙여가며 연료를 새로 구하고 로켓을 개조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도착하고픈 그 바다를 향해 지금 가진 로켓과 연료로 조금씩 나아가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과정과 종착지에 희망이 있음을 알기에, 지금 내 로켓에 손을 흔들어주는 이가 분명 응원의 의미로 손을 흔들어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신해철이 그런 말을 했었다. 안개 속에서 1m 앞이 벼랑인지 보물인지 모르고 곡괭이질을 하는 것과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곡괭이질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그 안개 속에서 손을 놓은 이들을 향해 욕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10년은 더 된 이야기인데, 어째 우리 삶에는 안개가 걷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
② 죽음의 나선
자유의지는 본질에 앞선다, 고로 나는 살아있다.
죽음의 나선, 이것도 중2병스러운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이야기다. "앤트밀"이라 하여, 개미들이 이동할 때 선두그룹의 개미들이 후미 또는 중간에 위치한 개미를 선발대로 착각해 그 뒤를 따라가고, 이것이 반복되어 개미들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단체로 빙빙 도는 현상이다. 개미들 중 시각이 거의 없고 페로몬으로 소통하는 녀석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렇게 다같이 죽어버리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란다.
이 죽음의 나선이 잔인한 것은 개미들 스스로는 이를 탈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뭐가 잘못되는 것 같긴 한데 알 방법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몰살엔딩... 그런데 윤하는 이것을 부정한다. "죽음의 나선을 끊어낼 때는 내가 정해" 라는 가사, 이것은 죽음의 나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다. 나선에 갇힌 개미는 스스로 나선을 끊고 탈출할 수 없음에도, 윤하는 이를 스스로 끊어낼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어서 "죽음의 나선을 끊어 비로소 찾아낼 자유, 무엇에 가치를 부여할지도 내 관할이야", 윤하는 나선을 끊는 불가능한 행위를 자유로 정의한다. 이는 운명을 거스르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향한 찬양이고, 동시에 운명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무의미함에 저항하는 의식이다.
흔히 인생을 쳇바퀴, 물레방아로 비유하곤 하는데, 윤하는 인생을 죽음의 나선으로 비유한 것이다. 인생의 본질은 무의미와 무가치의 반복, 그리고 종국에는 삶이 다해 죽어버리는 일. 그러나 스스로 나선을 끊어낼 의지를 가진 개미는 알고 있다. 이 나선을 끊어내고, 내가 나선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때, 비로소 자신이 죽음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인생의 본질을 의심한 개인은 그 본질을 벗어나는 자유를 행사하고, 그렇게 나선의 밖에서 진실과 정의를 구분한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사고해야 한다. 자유의지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할 때, 비로소 인간은 본질에 앞서 존재한다.
③ 코리올리 힘
빈털터리 이방인의 광시곡
코리올리 힘,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운동 방향의 뒤틀림으로 생각하면 쉽다. 호주에서 일본을 향해 공을 던졌을 때, 지구가 자전해서 동쪽으로 경로가 뒤틀리고,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 도착하는 그런 현상이다. 물론 실제로는 하네다 공항으로 갈 게 오다이바 빅사이트에 도착하는 그 정도의 오차 정도라나 뭐라나. 아무튼. 예상과는 다른 결론을 마주하거나, 멈춰버린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곡이라 보면 되겠다. 그걸 허무주의를 가득 얹어서 표현한 게 문제지만.
인트로의 불규칙한 미디사운드에 이어 리드미컬하게 기우뚱거리는 기타리프, 그리고 후렴에 들어서자 이 사운드들이 모두 둔탁하게 내려앉으며 애닳은 보컬이 치고 나온다. 토모리의 처연함과 이나미의 읊조림과는 다른 윤하만의 허무주의가 강하게 모노크롬을 그려내니, 자연스럽게 턱에 손을 괴고 심각하게 감상하게 된다. 독한 위스키를 마신 듯이, 목구멍에 칼칼함이 느껴지며 심장 한쪽에 뜨거움이 느껴지는 감상. 그러나 그것은 열정 따위의 마음이 아닌, 갈라진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에 가깝다.
보통 원하지 않은 인생에 대해 자조할 때는 내가 가고싶던, 되고싶던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길 마련이다. 그러나 코리올리 힘에선 이런 요소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중심이 고요해" 라는 정반대의 단어를 뱉어내고, "갈망하던 길에 묶인 채 후회로 타버린 심장 속" 으로 그 목표를 은유할 뿐이다.
이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 했음을 절규하기보단 잃어버린 과거에 후회하는 것에 가까우며, 정작 그 후회의 끝에 뭐가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 "목표"를 부르짖지 않고 그 "길"을 부르짖는 것이다. 이것이 윤하의 허무주의다. 목표가 있던 듯이, 그것이 불가항력에 멀어졌다 연기하지. 정작 그 목표도 불가항력도 없었다. 살던대로 살아, 중심이 없는채 살아 코리올리 힘을 그대로 받아 어딘지도 모를 곳에 도착한 처지를 자조하는 것이다. 잔인한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에게 자조적인 말이 될 텐데, 코리올리 힘의 메세지는 분명하다.
만년유망주에 취해있지 마라. 그 종착지는 가져 본 적도 없고, 쥐어짜낼 힘도 써버린 이방인이다.
Ⅳ . Death Disco (라이프 리뷰 / 구름의 그림자 / 새녘바람)
① 라이프 리뷰
바다 끝에 도착한 민물장어
이번 콘서트에서 발라드 부분에서 최고의 곡을 뽑으라면 난 라이프 리뷰를 뽑겠다. 무대가 진짜 너무 충격적이어서 제목도 가사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상태에서 "후렴에 고음을 연달아 지르던 곡" 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음원과 직캠을 통해 그 곡이 라이프 리뷰 였음을 기억해냈다.
신해철, 세카오와, 아마자라시, 그리고 쿠스노키 토모리. 내 음악 취향은 확고하게 자아탐구와 죽음을 직면하는 인간에 묶여 있고, 이런 사람에게 이 곡은 가치관을 뒤흔들 유산이다. 지금까지 죽음을 노래하는 이들은 내가 겪을 죽음과 생의 종착지에 대해 절규했다. 그러나 윤하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는 순간을, 나아가 그가 아직 살아있는 이 순간을 향해 그를 불러세운다.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부모임은 가사에 은연 중에 드러난다. 그대라는 정확한 청자의 지칭, 분신으로 표현한 자녀의 메타포, 그 자녀가 자라 부모를 향해 고백하는 "그때는 모르고 조금은 알게 된 세상의 순리란 것들" , 그리고 그대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어도 비극은 아니었다 말해주는 "잔혹한 동화의 주인공은 그대 하난 아니니" 라는 가사. 평소에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면 이런 가사가 나오지.
그리고 이 가사를 차분하게 쌓아올린 뒤 후렴에서 고음으로 소화하는데, 편곡과 연출까지 정말 칼을 갈았구나 했다. 계산으로 나올 작품이기도 하지만, 진심이 없으면 이토록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는 못 했으리라 짐작한다.
죽음에 관한 곡들은 지난 인류의 역사와 함께 노래되고 전승되어 왔으니, 윤하의 라이프 리뷰도 그 역사의 한 페이지에 쓰여 어리숙하게나마 그 의미를 이어갈 것이다. 특히나 이 곡이 망자가 사후세계에서 생자에게 기도하는 곡이니 더욱.
② 구름의 그림자
담백하게 풀어낸 기적
구름은 자연물 중에서 유독 존재와 철학에 자주 쓰였다. 아무래도 순환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발생과 소멸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물이 갖는 생명력이 삶의 이어짐을 표현하기 적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윤하도 이 포인트를 잡아 구름의 그림자를 이별에 대한 곡으로 설계했다.
앨범의 테마와 콘서트의 연출 모두 항해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만큼, 이곳에서 마주하는 구름은 항해 중에 조우하는 구름일 것이다. 보통 고독으로 상징되는 바다 위에서 우연으로 만나는 구름은 하늘의 이정표가 되거나 위험을 예고하는 신호 또는 위험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이는 삶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상징하여 그들이 비가 되어 바다에 스며들거나, 나의 항해와 바람에 의해 멀어져 이별함을 단조롭게 나타낸다. 바보도 알 수 있게 풀어쓴 윤하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곧잘 후기글에서 기억을 강조해왔는데, 구름의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존재는 형태가 달라지고 위치가 달라져도 분명 존재한다. 물리 변화, 화학 변화 이런 소리로 문과 감성 초치지는 말고.
③ 새녘바람
함께 웃을 수 있는 이 순간을 업데이트해 나가자
서정적인 발라드풍으로 시작하여 강렬한 록 사운드로 전개되고 다시 이글거림이 사그라들며 끝나는 새녘바람. 분위기가 굉장히 막곡 감성이라 콘서트 때 이 곡이 정규 세트리스트 막곡이고 앵콜로 넘어가는 건가 했다. 물론 뒤에 다른 곡들이 더 나왔는데, 이게 왜 그런가 했더니 앨범 마지막 수록곡이 이 곡이더라.
새녘은 동쪽을 의미하는데, 콘서트에서의 화면 연출로 보건데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들 중에서도 일출과 함께 피어나는 바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일매일 새로운 날이 시작될 때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새녘(동쪽)에 밤이 올 때도 그 존재가 있어 두렵지 않음을 노래한다. 찾아봤더니 이 곡이 윤하 팬들(홀릭스)을 위한 곡이라 하니, 가수가 팬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로 보면 되겠다.
나는 홀릭스는 아니라 그런갑다- 하는데, 내 가수들의 이런 곡들을 보면 새녘바람은 정말 밝은 곡이다.
Ⅴ . 이치에 맞춰 태어난 우리 (맹그로브 / 포인트 니모)
① 맹그로브
나의 종들은 모두 일어나서 나를 맞이하라
이번에 콘서트를 보면서 음원과 가장 다른 대반전의 곡을 뽑으라면 당연히 맹그로브다. 음원으로 들을 때 케이프 혼 보다 더 난해한 곡이 있네- 하면서 들었는데, 콘서트에서 라이브로 보니 이 곡은 애초부터 전자매체를 위한 곡이 아님을 알았다. 곡의 해석과 감상부터 라이브로 재정립이 되며, 화면 연출과 곡 앞뒤로 쌓아올리는 빌드업이 말이 안 된다. 이건 안 본 사람들은 내가 설명해도 뭔 소리하는지 이해를 못 할 거다.
맹그로브에서의 윤하를 표현하면, 교주다. 아니, 교주보다는 신에 가깝다. 내가 이 땅에 이름에, 나의 종들은 듣거라. 나는 땅이자 하늘이자 바다일지니, 나를 통하는 수목은 모두 나의 자식들이니, 너희는 뿌리가 같고 나의 육신에 몸을 담은 존재임을 잊지 말거라, 두려워 마라. 그리고 나의 종들은 모두 일어나서 나를 맞이하라. 뭐 이런 분위기다.
현장에 있으면 안다. 가이아 사상에 의거해 절대적 존재가 청중을 신자로 받아들여 그들에게 초월적인 힘을 나눠준다는 것을.
② 포인트 니모
죽는다는 것은 태어났음을 의미하니까
인공위성의 무덤으로 불리는 포인트 니모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곡으로, 보통 이 이름이 고독과 폐기를 상징하는 것 치고는 매우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물론 콘서트에서는 무반주로 후렴을 내질러버리는 미친 모먼트를 보여주는 바람에 그 고독함을 머리에 때려박고 시작한 게 정말 컸지만.
포인트 니모의 보편적인 고독함은 라이브 연출에서 드러났고, 남은 하나 폐기, 즉 죽음을 상징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포인트 니모라는 이름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퀘이사에서 퀘이사를 삶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를 대입해보라 했는데, 마찬가지로 포인트 니모를 저승으로 치환하면 이 곡의 메세지가 드러난다.
포인트 니모, 인공위성, 우주가 가장 가까운 곳, 외딴 지역, 이런 것들은 신경 쓰지 말고 이 노래를 들어보면, 결국 이 노래는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삶을 회고하는 곡이다. "다시 태어나도 종착할 여기 포인트 니모" 라는 가사는 다시 태어나도 우린 또 죽는다는 의미이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란 이치에 따라 태어났다는 다소 허무할 수도 있는 말이 나온다.
허나 그렇게 말할 거면 이렇게 밝은 곡이 아니었겠지. 죽음이 있다는 건 태어났다는 의미이고, 그 태어나 살아가는 시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되짚어보고 그 삶이 썩 나쁘지 않은 삶이었고 그런 삶이 되게끔 살아가라는 것이 포인트 니모의 진심이다. 죽는 건 죽는 거고, 내 삶이 1회차인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그 1회차 플레이에서 기쁨도 느끼고, 불안에 저항도 하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랑도 나누고, 포인트 니모에서 다시 만날 때 수고했다 말하자는 이야기.
일단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Ⅵ . Rock No."Y" (오르트구름 / No Limit / Rock Like Stars)
① 오르트구름
대 황 윤 하
사건의 지평선과 함께 역주행으로 천상계를 찍고 내려온 오르트구름. 할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객석 난입은 상상도 못 했다. 이건 직관한 내 자랑거리로 남겨둬야지. 후기 써봐야 뭐 할 말 있나. 내가 노래방 가면 자주 부르는데, Rock 편곡 강하게 가미된 라이브 버전은 수록 안 해주려나.
② No Limit
슈퍼소닉 펀치
이 곡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윤하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 색채를 보여주기 시작한 4집에 수록된 정통 록 No Limit 이다. 인트로가 레이싱 게임 BGM스러워서 즐겨 들었던 곡이고, 따라 부르다보면 숨 차서 죽는 그런 곡이다. 윤하 노래들이 듣기는 편해도 부르려고 하면 모가지 작살나는 곡들인데, Rock & Pop한 이 노래는 오죽하겠나.
콘서트에서 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역시 깜짝 등장한 메가폰. 이게 Rock 스피릿의 정수지. 크으-
③ Rock Like Stars
MVP : 다음은 락페다
윤하 4집곡들 중에서 발라드는 《기다려줘》를 최고로 뽑으며, 록은 Rock Like Stars를 최고로 뽑는데, 그 두 곡 중 록을 담당하는 곡이 하드메탈 편곡을 가미해 라이브에 등장했다. 그리고 나는 오랜 록붕이다. 콘서트 록 부문 GOAT는 락라스다.
이게 록 블러드가 요동치지 않으려 해도 불가능하다. 원래 좋아하던 곡을 하드메탈 중첩을 쌓아올리고, 여기에 더해 밴드 세션 소개 파트가 나온다? 이거 못 참는다. 원래 세션 소개 부분은 타이거JK의 피처링 랩이 들어가는데, 솔직히 랩 싹 빼고 Rock 편곡 이렇게 투입하는게 더 좋아보인다.
이때 양손으로 🤟만들고 온몸으로 리듬 타면서 들썩이며 놀았는데, 뒷자리에 있던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보면서 이 양반 미친놈인가 했을 거다.
그리고 윤하 말대로 다음에는 락페로 가자.
Ⅶ . 오리콘의 슈퍼스타 (살별 / 혜성)
① 살별
직관기만의 끝판왕
살별은 혜성의 우리말로, 제목뿐 아니라 곡의 분위기와 연출까지 철저하게 혜성의 후계자로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곡이다. 역주행에 힘입어 알음알음 이 노래도 알려진 걸로 알고 있는데, 신나는 분위기와 관객과 소통하는 콜 포인트까지 한 번쯤 우리쪽 캐스트에게서 들어보고 싶은 그런 노래다.
진짜 "뜨겁게! 타오를 때에! 네 곁에! 있을게!" 이 부분은 해본 사람만 아는 그 맛이 있다. 진짜 재밌다.
② 혜성
우리 동네 음악 맞네
일어 원곡이 존재하는 곡 중 하나로, "호우키보시" 라는 이름으로 블리츠의 애니 ED곡으로 쓰인바 있는 혜성. 그 뿌리가 애니송이다 보니 어레인지가 가미되어도 애니송 특유의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다. 난 익숙하니까ㅋㅋㅋ
한 가지 조금 신기했던 건 댄스팀 동원해서 춤을 추는 것과 심지어 그 춤이 치어리딩 응원단 춤이라는 것. 어쩌다 혜성이 이런 곡이 됐지. 내가 아는 건 블리츠 엔딩곡에 한국어로 번안되어 들어왔다는 건데. 물론 재밌으니 좋았쓰.
대충 여기까지가 Rock 충만한 무대들인데, 록붕이라면서 후기가 짧으니 앞뒤가 안 맞아 보일 거라 생각한다. 근데 어쩌겠나, 난 신나게 즐기다 와서 이때 노느라 정신 없었다.
Ⅷ . 엔딩 (Parade / 26)
① Parade
대중성을 투입한 실험적인 그 노래
5집에 수록된 Parade는 날 콘서트에 끌고 가신 분이 나한테 재대로 퍼먹인 곡 되시겠다. 4집은 몇몇 곡 빼고 내가 다 듣고 살았는데, 그 뒤로는 음악 취향이 갈리면서 안 듣고 있었다가 5집에 Parade가 나오면서 츄라이 츄라이 당해서 자주 듣게 됐었다. 당시 나는 5집 곡 중엔 《없던 일처럼》을 가장 많이 듣긴 했지만.
아무튼 의도치 않게 잘 아는 노래가 된 Parade를 이번 콘서트에서 처음 직관했는데, 편곡이 색다른 건 둘째 치고 이게 왜 댄스곡이지 했다. 몽환적인 사운드라 이소라의 무대처럼 의자에 앉아 읊조리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댄스팀까지 동원해서 춤을 춘다니.
생각해보면 5집 당시에 Parade에 대해서 윤하가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노래에 도전한 인상이 있었더랬다. 그래서 주변의 윤하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적어도 내 주변엔 다 호에 가까웠던 것 같다. 당시의 증언(?) 중 기억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윤하의 완벽한 곡". 이렇게 말한 윤하 팬이랑 나름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은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사족으로 아이컁 닮았다)
② 26
엔딩 특화곡
이번 콘서트의 정규 세트리스트 곡들 중에 유일하게 단 한 번도 안 들어본 노래가 26이다. 난 이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다. 제목도 이십육이 아니라 이륙이라고 읽는단다. 비행기 이륙할 때 그 이륙을 네이밍한 게 맞다고 한다. 제목은 그렇게 이륙인데 시작의 이미지가 아니라 이별의 이미지라니, 이래저래 특이한 곡이란 인상이다. 맨날 꿈 얘기하면서 마치는 우리 쪽 애들이 더 이상한 건가.
이 무대 끝나고 리프트 타고 내려가면서 형식상 인사하는 거고 앵콜 있으니 집에 가면 안 된다는 MC를 하는 윤하. 이 사람도 보통 미친 사람이 아니다.
Ⅸ . 앵콜 1 (사건의 지평선 / 잘 지내)
① 사건의 지평선
괴로운 일이 있어도 다시 앞을 향할 수 있어
사건의 지평선. 대대적인 역주행에 힘 입어 사실 노래 좀 듣는다고 말하는 세대들이 모를 일이 절대 없을 그 곡이니 부가설명이 필요할까싶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는 알게 모르게 2022년 11월 1일에 있던 그 공지 이후로, 이 곡을 토모리의 한국어 테마 곡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윤하와 토모리 당사자들이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겠지만.
어찌되었건 이 곡에 얽힌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워낙 슬프고 마음 아리는 일이라 경건하고 애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회장에 울려퍼지는 분위기는 밝다 못해 희망적이었다. 이별 노래라 슬픈 노래인데, 분위기가 왤케 밝니.
그 괴리감 때문에 적응이 안 되는데, 그래도 다같이 부르고 하다보니 어쩌면 원래 이런 노래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금이야 시간이 많이 흘러서 많이 나아졌지만, 정말 당시에는 힘들었던 마음 뿐이고... 돌고돌아 사건의 지평선에서 할 말은 하나 같다. 윤하에게 고맙다.
② 잘 지내
👍
이 앞에 곡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퍼포먼스로 최고의 곡은 잘 지내다. 퍼포먼스 얘기니까, 이 무대는 직캠 영상 꼭 눌러서 확인하길 바란다. 진짜 보고 충격받았다. 이걸 이렇게 하는 가수가 있구나.
수화를 일종의 기술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수화는 엄연히 언어에 속하고, 때문에 수어로 부르는 것이 더 알맞는 표현이다. 그리고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와 일부 어순이 다르다. 그걸 의식하면서 노래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윤하의 수어 퍼포먼스는 동시통역과 다를 게 없다.
얼마나 연습했을지 정말 감도 오질 않고, 고생했을 거란 어떤 격려와 감탄을 넘어서 존경이 피어나는 무대였다. 수어를 약간이지만 공부했던 터라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걸 이해하고 있으니 더더욱.
Ⅹ. 앵콜 2 (나는 계획이 있다 / 기특해)
① 나는 계획이 있다
더블 앵콜이 진짜로 있네
잘 지내 끝난 뒤에 회장에 불이 안 켜지길래 뭔가 했는데 더블 앵콜이었다. 그리고 그 첫 곡은 나는 계획이 있다. 이 노래를 오지게 영업 당해서 6집 곡들 중에서 별의 조각, 오르트구름 다음으로 많이 들었을 텐데, 댄스곡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보컬 템포가 변화무쌍해서 안무까지 소화하기 정말 힘들 텐데 이걸 어떻게 해내는 거지 싶었다. 우리 쪽 리에라류 발라드 계보랑 비슷한 포지션인가.
② 기특해
윤하 더 뮤지컬
윤덕들 입장에서 가장 스펙타클 드라마틱한 무대는 기특해라고 생각한다. 춤을 저렇게 추는 곡을 찐찐막곡으로 보여주는데 재미가 없을래야. 그리고 자꾸 댄스 욕심을 내는 내 가수라니, 팬도 가수도 별종이다. 팬은 왜 별종이냐고? 춤 추자고 하면 자꾸 터치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무대를 본 소감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뮤지컬스러웠다. 나한텐 아주아주 익숙한 맛이었고, 윤하라면 본인이 원할 때 얼마든지 대형 작품 주연은 딸 수 있을 것 같다.
◆ 아주 사소한 진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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