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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지가사키 장편/응답하라! 니지가사키!

시오리코「응답하라, 니지가사키.」~번외편 1화~

by 양털책갈피 2021. 8. 19.

제 마음에 그대가 스며들어,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피어났습니다. 저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훌쩍 자라 버려 그대도 언젠가는 이 사랑을 알게 되겠지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처음 만났을 때 한눈에 반했다고 말할 걸 그랬습니다. 그랬다면…

친한 후배일 뿐인 저를, 이해해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학생회실

…신체는 자고 있지만, 정신은 깨어있는, 그 경계네요. 의지만 있다면 일어날 수 있지만, 뭔가 포근해서 일어나고 싶지 않아요. 이어폰은 저도 모르게 어느샌가 빼버렸는지, 노랫소리가 아니라 부회장님의 말소리가 들리네요.

― 「그럼 ―――――에 ―――――는 코―― 씨께서…」

…그런데 저는 분명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왜 소파에 누워있는 걸까요? 게다가 부회장님의 목소리도 앞에서 들리고, 부회장님은 잠든 제게 말을 거실 그런 분은 아닐 텐데요. 뺨에 닿는 감촉도 무언가 다르고… 어라? 누가 앞머리를 만지는 듯한…

시오리코 「…?」 뒤척, 부스스

부회장 「아, 회장님.」

―「시오리코 쨩, 일어났어?」 쓰담쓰담



시오리코 「아유무 씨.」 어깨 톡톡

아유무 「응? 아, 미안. 시오리코 쨩.」

시오리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될까요.」

아유무 「나도… 잘 모르겠어.」

시오리코 「…그럼,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어요? 아유무 씨께, 꼭 묻고 싶은 것이 있거든요.」

아유무 「나한테?」 깜짝

시오리코 「네. 아유무 씨는 선물을 받는다면, 어떤 걸 받고 싶으세요?」

아유무 「선물? 선물이라면 어떤 거?」

시오리코 「…제게 정말 소중한 분이 있는데, 곧 그분께 중요한 날이 와요. 선물을 드릴까 하는데, 무엇을 드려야 할지 아직 정하질 못했거든요.」

아유무 「ㅇ, 어? (소중한 사람? 중요한 날?)」 혼란

시오리코 「아유무 씨는 제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분이니까,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속물 같나요?」

아유무 「아, 아냐! 나야말로 시오리코 쨩이 의지해준다니까 고마운걸!」

시오리코 「그런가요. 역시 아유무 씨는 상냥하세요.」 후훗

아유무 「…저기, 그래서 하려던 얘기는 뭐였더라? 아, 선물이었지!」 딴청

시오리코 「…….」 종이컵 만지작

아유무 「…시오리코 쨩, 혹시 누구한테 주려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조심

시오리코 「…있죠, 아유무 씨.」

아유무 「응?」

시오리코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시오리코 「응답하라, 니지가사키.」
: 번외편 1화 ~사랑을 담아 꽃다발을(愛をこめて花束を)~

고백할 용기도, 좋아한다는 티를 낼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그대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 저는 행복합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가끔 껴안아 줄 때 느껴지는 체온, 어쩌면 친언니에게 받지 못한 따스함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꼭 숨긴 제 마음은 책상 서랍 안의 일기장에 가지런히 써두었습니다. 저 말고는 열어볼 일 없는 이 자리에, 그동안 부치지 못한 연애편지가 하루하루 쌓여 갔습니다. 때로는 제 마음을 몰라주는 그대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끝은 결국 고마움이었습니다. 항상 거리를 두는 제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으니까요.

책상 옆 코르크 보드에 동호회 모두의 사진이 제각기 걸려 있습니다. 작지만 조금은 제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 단둘이 찍은 사진은 하트 모양 압정으로 고정해두었습니다. 혹시 누군가 보더라도 들키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괜스레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 기분 나쁘다고 하실까요? 아니면 장난기 섞인 말투로 「시오리코 쨩은 혹시 나를 좋아하는 걸까나~」라고 말씀하실까요?



사건은 12월 초에 일어났습니다. 하교 후, 곧바로 부모님께서 저를 응접실로 부르셨습니다. 언니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조용히 언니의 옆에 앉아 분위기를 살폈습니다. 두 분은 한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다 툭, 바닥에 던져져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제 일기장이었습니다.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남의 물건을 왜 함부로 보냐고 화를 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를 보는 부모님의 눈빛이, 너무나도 차가웠습니다.

「사람에게도, 가문에게도 급이 있다」, 「차라리 오사카 양이라면 모를까」, 그 말 이후로는 어떤 말이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언니께서는 저를 감싸는 것인지, 자신을 미후네 가의 대(代)만 이어 줄 혈육으로 보는 것에 화가 났는지 몰라도 금방이라도 아버님의 멱살을 잡을 것 같은 눈빛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떨리는 제 왼손을 꽉 붙잡아주고 있었습니다.

혼란한 머릿속에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결국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아버님과 언니,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쭉 말씀이 없던 어머님은 저를 방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미처 갖고 나오지 못한 일기장이 생각났지만, 이젠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진을 한 장, 또 한 장 모두 떼어냈습니다. 가만히 놔두다 이것마저 잃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사진은 교복 재킷 속주머니에 넣어, 그대로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복도에는 여전히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격앙된 목소리에 어떤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집을 나온 걸까, 1시간쯤 지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갑 안의 돈은 2천 엔 남짓이었습니다. 옷이라고는 입고 있는 교복뿐이고, 하다못해 가출할 거라면 외투라도 챙겨 나올 걸 그랬습니다. 집에서는 제가 나갔다는 사실도 모르는지,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저는 『미후네』가 아니면 한없이 약한 사람이란 것을 집을 나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밤이 되었습니다. 겨울이라 해가 짧다는 사실을 가로등 불이 켜지고서야 알아챘습니다. 학교 근처 공원에 멍하니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걷는, 돌아갈 곳이 있는 그들의 생기가 도는 눈빛, 집마다 불이 켜지고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가 느껴졌습니다.

휴대폰이 진동했습니다. 언니였습니다. 전화를 받을 기분이 아니라 받지 않았습니다. 벤치에 무릎을 감싸고 앉아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5분? 10분? 그 정도의 틈을 두고 휴대폰이 여러 번 떨렸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자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시오리코 쨩?」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시오리코 「카나타 씨…」 울먹

카나타 「설마 했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날씨도 추운데! 아, 잠시만!」 주섬주섬

…카나타 씨는 허둥지둥 제게 목도리를 둘러주시고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저녁 장바구니를 곁에 내려두시고, 제 뺨에 흘러내린 눈물자국을 닦아주셨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더 물어보실 것 같았지만,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일단 집에 가서 몸부터 녹이자고 말씀하시며 저를 카나타 씨네로 데려갔습니다.

카나타 「시오리코 쨩, 사양 말고 들어와.」

시오리코 「…네. 실례하겠습니다.」 쭈뼛

하루카 「언니~! 아, 시오리코 양.」 깜짝

카나타 「하루카 쨩, 말도 없이 손님 데려와서 미안해. 그래도 괜찮지?」 에헤헤

시오리코 「죄송해요, 늦은 시간에 갑자기―」 꾸벅

하루카 「아니에요! 예전에도 같이 저녁 먹은 적 있잖아요. 편하게 들어오세요.」 생긋

하루카 양은 별다른 말 없이 환영해주셨습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하루카 양도 눈치챈 분위기였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며 애써 모른 척해주시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저녁 식사 때도 두 분은 각자의 스쿨 아이돌 활동 얘기를 하며, 제 눈치를 살피셨습니다. 그 모습에 자매가 참 닮았구나 생각하며 괜스레 피식 웃었더니, 두 분도 안심하고 웃으셨습니다.



하루카 양이 목욕하러 간 사이, 카나타 씨는 부엌에서 함께 코코아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으셨습니다.

카나타 「지난번처럼, 카오루코 씨랑 다툰 거야?」

시오리코 「…아뇨. 그건 아닐 거예요.」

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습니다. 전화가 아니라, 언니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부모님께는 내가 데리고 갔다고 말해두었으니 허튼짓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갈 곳 없으면 데리러 갈 테니 전화하라는 말로 문자는 끝나 있었습니다.

카나타 「카오루코 씨야?」

시오리코 「네. 집에는 얘기해뒀으니… 밖에서 얼어 죽지만 말라고 하네요.」 싱긋

카나타 「헤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구나.」 살짝 당황

시오리코 「장난이에요. 비슷한 뉘앙스지만.」

카나타 「…있지, 그럼 부모님이랑 다툰 거야?」

시오리코 「…….」

카나타 씨가 제 눈치를 살피는 듯, 컵을 내려놓고 열릴 생각을 않는 제 입술만 바라보셨습니다.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렇게 추태를 부린 상대에게…

카나타 「후계자 문제 그런 거야?」

시오리코 「…네. 저랑, 두 분의 뜻이 조금 달라서요.」

카나타 「…….」 끄덕끄덕

…카나타 씨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습니다.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시고 잠깐 생각에 잠긴 듯 보이셨습니다. 하필 이런 순간에, 왜 아버님의 그 말이 떠올랐던 걸까요. 「가문에게도 급이 있다」, 그 말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은 결국 카나타 씨네에 신세를 졌습니다. 하루카 양이 제 눈치를 살피시더니 저와 카나타 씨 두 사람이 같은 침대에서 자게끔 슬쩍 말을 흘리셨습니다. 카나타 씨도 저만 괜찮다면 그래도 되겠냐 물으셨고, 거절할 면목도, 도리어 치기 어린 욕심에 카나타 씨의 곁에서 잠들었습니다.



보름의 시간이 흘러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부회장님께서 난처한 얼굴로 서류 한 장을 건네셨습니다. 재단에서 선정한 해외 유학 장학생 명단이었습니다.

시오리코 「그런데 장학생은 10월에 이미 선별하지 않았나요?」

부회장 「특별히 한 명이 더 선별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수혜 학생에게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이사장님께서 제게 직접 말씀하셨지만…」 스윽

― (수정1) 해외 유학 장학생 명단

부회장 「…역시 회장님께,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 추가) 라이프디자인학과 『코노에 카나타』

시오리코 「…추가 선발자가, 카나타 씨인가요?」 벙-

부회장 「네. 일단 학생 본인의…」

시오리코 「잠시만요, 잠깐 생각 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상황 파악이 안 됐습니다. 분명 부모님께는 용서를 빌었고, 카나타 씨께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해달라고…

부회장 「회장님.」 어깨 덥석

시오리코 「!」 깜짝

부회장 「어떤 심경이신지 짐작은 됩니다만, 혹여나 무모한 짓을 하시려 한다면 이 서류는 제가 가지고 나가겠습니다.」

시오리코 「부회장님…」

부회장 「제게 회장님은 학생회 동료이기도 하지만,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한 친한 후배이기도 합니다. 감정에 사로잡혀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지는 말아주세요. 시오리코 양.」

시오리코 「…네.」

부회장 「하려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코노에 씨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해서 무조건 유학을 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학생 본인이 거절하면, 없던 일이 되거나, 다른 학생에게 수혜가 돌아가니까요.」



아유무 「(시오리코 쨩이 카나타 씨를 좋아했구나)」

시오리코 「…죄송해요, 서론이 길었죠?」

아유무 「아, 아니야!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시오리코 「저희가 알았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예요. 장학생을 늘리는 건 누가 보아도 선행으로 보이니까요. 부회장님을 통해 일을 처리하려던 것도, 혹여나 제가 간섭할까봐 그런 거였을 테고요.

아유무 「…시오리코 쨩은 카나타 씨의 유학에 부모님이 간섭했다고 짐작하는 거야?」

시오리코 「부모님은… 제가 짝사랑이 아니라, 교제 중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마음을 접겠다는 제 말을 믿지 못하고, 가장 확실한 수를 쓰신 거겠죠.」

아유무 「시오리코 쨩…」 안타깝

시오리코 「그리고 두 분은 약속을 지키셨어요. 졸업까지 모든 학비를 지원하는 장학 사업이 『피해』는 아니잖아요. 카나타 씨도 고민 끝에 유학을 결정하셨고요. 오히려 가지 말아달라고, 말조차 꺼내지 못한 제가 멍청했던 게 아닐까…」

아유무 「…….」

시오리코 「그래서 아유무 씨께, 이 이야기를 꺼낸 거예요. 졸업 전에 저는 꼭, 이 마음을 카나타 씨께 전해드리고 싶어요.」

아유무 「…응! 꼭 도와줄게! 처음부터 끝까지!」



아유무 씨의 조언은 제 진심을 그대로 표현하길 바란다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이야기가 새어나가 일이 커질 것을 염려해, 그날의 대화는 아유무 씨와 저만의 비밀로 약속했습니다.

한 달 남짓한 겨울방학 동안,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카나타 씨의 영어 공부를 도와드릴 겸, 스쿨 아이돌 연습 후에 따로 만났습니다.

시오리코 「그러니까 실전 회화에서는… 아, 잠시만요.」 휴대폰 확인

카나타 「카나타 쨩, 분명 영어 시험은 잘 봤는데…」 추욱-

시오리코 「이것만 보내고 바로 봐 드릴게요.」 문자 보내는 중

카나타 「…시오리코 쨩.」

시오리코 「네?」

카나타 「아유무 쨩이야?」

시오리코 「아, 네…」 당황

카나타 「헤에- 역시 둘은 친하구나?」 능글

시오리코 「제, 제가 일방적으로 신세 지고 있는 걸요.」 뺨 긁적

카나타 「흐음- 그렇구나.」 끄덕

시오리코 「…….」 살짝 눈치

카나타 「있지, 시오리코 쨩. 시오리코 쨩한테만 살짝 알려줄까?」

시오리코 「네?」 깜짝

카나타 「전에 진실게임 했을 때 말이야, 나 카린 쨩의 질문에 O를 냈어.」

시오리코 「카린 씨라면…」

― 카린 「이제 내 차례지? 그럼 진실게임다운 질문을 해볼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자, 투표해줘.」

시오리코 「네, 넷?!」 화들짝

카나타 「그래도 아유무 쨩의 질문에는 X를 냈으니까 걱정하지 마~. 카린 쨩을 살-짝 놀려주려고 하루카 쨩을 생각하며 냈던 거니까.」 헤실헤실

시오리코 「그, 그렇군요…」

…카나타 씨는 촉이 좋으신 건지, 둔하신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아유무 씨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당장이라도 제가 좋아하는 건 카나타 씨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반년을 묻어두었던 제 사랑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습니다.


▶ 3월 1일, 졸업식

란쥬 「그보다 시오리코는?」

시즈쿠 「시오리코 양은 졸업식 준비 때문에 지금 시간을 내기 어려운가 봐요.」

카린 「학생회도 참 융통성이 없네… 선생님들께서 이 정도 편의도 못 봐주시나?」

아이 「내가 가서 데려올게!」

카나타 「아냐아냐! 시오리코 쨩은 어제 미리 인사해뒀어. 본인도 미안해했고, 카나타 쨩은 괜찮으니까!」

― ♬~♪♩, 학교 방송 알림
― 시오리코 「잠시 후, 8시부터 졸업식을 강당에서 진행하겠습니다. 3학년 학생분들과 2학년 학생 대표단께서는 지금 강당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1, 2학년 학생분들께서는 각자의 학급에서 종업식을…



…한심하게도, 결국 이 날까지 말을 못 했네요. 아유무 씨와 정한 마지노선은 졸업식 날, 3월 1일. 아유무 씨의 생일 파티는 꼭 홀가분한 마음으로 참석하겠다고 약속드렸는데…….

부회장 「…카나타 씨는 이미 공항으로 출발하셨을 거예요.」

시오리코 「…알고 있어요. 마지막 인사도 못 드리고, 결국 이렇게 되네요. 」

부회장 「회장님, 지금 그 상태로는 졸업식 진행도 못 하실 거예요.」

시오리코 「죄송합니다. 식전까지 잘 추슬러서 문제가 없도록…」 눈 문질문질

부회장 「…가세요, 어서.」 마이크 탈취

시오리코 「부회장님…?」 깜짝

부회장 「진행은 제가 할게요. 지금 출발하면, 탑승장에 나서기 전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시오리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울먹

부회장 「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요.」 싱긋

그대로 학교 밖으로 달려 나가 택시를 잡았습니다. 졸업식과 종업식이 진행되던 때라, 마주치는 사람 없이, 꼭 그날 집을 뛰쳐나갔던 때와 닮았습니다.

시오리코 「(아, 아유무 씨께도 알려드려야…)」

『아유무 씨, 시오리코입니다. 지난번에 부탁드렸던, 오늘 일은 다른 분들께 비밀로 해달라는 것을 다시 말씀드리고자 이렇게 문자를 보냅니다. 아유무 씨께만 약속을 강요하고, 정작 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공항에서 돌아오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유무 씨』

시오리코 「…됐다. 기사님, 조금만 더 빨리 부탁드립니다.」



교복 차림에 실내화를 신고, 숨을 헐떡이는 제 모습에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지만 아랑곳 않았습니다. 뛸 수 있을 때는 계속 뛰었습니다. 발끝이 까져 양말에 피가 스며들고,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마른 기침이 계속 났지만, 카나타 씨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시오리코 「2층… 국제선 출국장 로비… 분명 여기 어딘가에…!」

― 카나타 「〔보안검색대 입장 직전〕」

시오리코 「카나타 씨!!!」

카나타 「…? 에, 시오리코 쨩?!」 깜짝

시오리코 「카나타 씨…….」 뜀박질

카나타 「왜 여기에…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휙-

탑승장 플랫폼에 들어가기 직전, 카나타 씨는 대기줄을 빠져나와 제게 달려오셨습니다. 의아함에 커진 두 눈에 엉망진창인 제 모습이 비쳐 보였습니다. 산발인 머리에 여기저기 흐트러진 교복, 이마에 맺힌 땀방울… 그래도 카나타 씨를 만났다는 사실에 감정이 북받칩니다. 이제는 제 마음만 전하면, 그런데 숨이 차올라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만났는데…

시오리코 「(뭐라고 말을 해야…)」 숨 고르는 중

카나타 「학교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졸업식은 어쩌고? 그보다 땀 좀 봐, 잠시만.」 주섬주섬

시오리코 「(꼭… 말을 해야… 부회장님도, 아유무 씨도 그렇게 도와주셨는데…)」

카나타 「인사는 어제 했으니까 괜찮다고 그랬잖아…」 이마 톡톡(손수건)

시오리코 「…저기, 카나타 씨!!」

카나타 「어, 어?」 깜짝

시오리코 「카나타 씨… 저는… 그러니까…」

시오리코 「(망설이면 안 돼요, 제대로 얼굴을 보고 말을 해야…)」

시오리코 「카나타 씨, 저는…!」 고개 휙

카나타 「…….」 손 꼬옥

시오리코 「!」

카나타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말해도 돼. 시오리코 쨩.」 생긋

…지금, 그런 표정을 지으시면, 말할 수가 없잖아요. 제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셔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왜… 아직도 저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언니니까 안아주겠다는 그런 미소로… 저를 보시는 건가요.


왜 카나타 씨가… 제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는 건가요…


시오리코 「카나타 씨, 저는…」

카나타 「응, 시오리코 쨩.」

정말 미안해야 하는 건… 당신의 일상을,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당신을 홀로 먼 곳으로 가게 만든 저인데…

시오리코 「…저는, 카나타 씨가, 어디서든 미소를 잃지 않고, 지내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부디… 저를… 제 마음을…

시오리코 「…다음에 만날 때도, 꼭 이렇게 웃으면서, 만나자고, 약속해주세요.」 싱긋

카나타 「…응! 고마워, 시오리코 쨩!」


탑승장으로 나서는 카나타 씨를 마지막까지 배웅해드리고, 손을 흔들며 애써 미소를 짓습니다. 이제는 카나타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참았던 눈물이 이제야 터져 나옵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차가운 바닥에 닿아 흩어집니다.

저는 참 제멋대로에 배려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떠나는 이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한들, 그것은 제가 편하기 위해 그대를 울리는 일이란 걸, 그대가 떠난 뒤에 알았습니다. 지금 이 눈물을, 제가 흘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멋대로 사랑을 드린 대가로 받은 그리움은 제가 견디겠습니다.



부디 다음에 만날 때는, 우리의 약속대로, 저 또한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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