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래저래 써봤는데 만족스런 글이 나오지 않아, 그냥 제 문체대로 막 썼습니다.
Ⅰ.
이별은 준비되어도 어렵다. 갑작스런 이별보다 그 충격이 덜할 수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그것이 슬픔과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나를 떠나게 될 것이고, 설령 나를 떠나지 않아도 내가 그들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어쨌거나 삶에 영원은 없다. 우리는 단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흐를 세상에서 ―길어야 100년에 불과한―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 짧은 순간을 살며 언제나 기뻐할 수도 없거니와, 달리 말해 언제나 슬퍼할 수도 없을 테니.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찰나의 삶에 눌러 담은 긴 시간이, 지금의 이별과 상처를 아물게 하리라.
만남이 5년이었으니, 헤어짐을 감내할 시간도 5년 그 언저리일 것이다. 그 사이에 나는 여러 인연을 거쳐갈 것이고, 어쩌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이별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슬퍼할 것이고, 지난날의 이별들을 곱씹으며 비교적 빨리 마음을 다 잡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별을 향해 흐른다.
Ⅱ.
화면에 잡힌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셔서일까, 하지만 코끝이 유난히 붉은 건 분명 울먹임이다. 누구보다 슬픈 것은 본인일 텐데, 그런 본인이 울음을 참고 있으니 팬인 내가 슬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녀가 이 무대에서 내려올 때에, 오늘 무대에 아쉬움이 남지 않길 바랐다.
혹자는 말한다. "오늘이 마지막 무대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무너지는 곳은 그런 허상의 어휘가 아니다. 지난 몇 년, 수많은 이유로 극단을 떠난 이들을 여럿 봐왔다.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 참여한 이들은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져도 쉽게 그 자리를 뜨지 못 한다.
끝이라는 실감, 아쉬움과 후련함 이후 찾아오는 공허함, 어쩌면 이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 모두 맞는 말이지만, 심장에 날아와 꽂히는 말은 아주 구체적이고 매정하다.
"지금 무대를 떠나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앵콜 이후, 스테이지 뒤로 향하는 발걸음을 쉽게 내딛지 못 하는 모습을 보며 느꼈다. 세 명 다 같은 마음이겠구나.
Ⅲ.
팬이 되었기에 슬픈 것이다. 애초에 좋아하지 않았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면, 무덤덤하게 지나갔을 일이다. 그렇다 한들 팬이 된 것을 후회하느냐, 당연히 아니다. 그녀가 마지막 무대를 후회 없이 내려갔다면, 나 역시 후회 없이 응원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간 시간에 후회는 없다. 그 순간이 정말 기쁘고 좋았으니까. 오히려 더 좋아해주지 못 한게 아쉬울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팬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면, 한 번이라도 현장에서 응원할 수 있었더라면. 뭐 이런 아쉬움들이 슬픔에 섞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과거는 추억일 뿐이고, 이별은 팬들에게서 응원의 기회를 앗아갔으니. 갈 곳 잃은 응원과 좋아함이 클수록 더 슬픈 건 어쩔 수 없다. 더욱이 못 해준 것만 기억나면 더욱.
그저 그 감정이 누군가를 향한 증오로 바뀌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응원은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Ⅳ.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좋아해 왔던 이들에게 비극이 너무 많았다. 사실 언제나 행복할 수만은 없는 일이긴 하나, 하필 왜 나와 나의 우상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팬이라 부르기도 뭣한 잡것들과― 팬들이 서로를 헐뜯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건의 당사자들 또는 남겨진 이들이 더한 상처를 받아야 했다는 것에 더 고통스러웠다.
원래 이 일이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고 물건처럼 바꾸는 일이 허다하다만, 정작 그들을 지켜줘야 할 소속사와 레이블이 합심해서 내치고, 때로는 여론까지 통제하니 좀처럼 좋게 봐주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결국 모든 비극에는 악당이 있어야 했고, 사람들이 헐뜯기 좋았던 것은 언제나 스타였다.
내 음악의 기준점이자, 현실에 타협한 지금도 무대를 꿈꾸게 하는 가수는 결혼 사실을 숨기고 활동했던 것을 빌미로 소속사에서 나가야만 했다. 본인의 선택이었다고 회고하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팬으로서는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단 것을 모를 수가 없다.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좋아했던 아이돌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여론이 방황하며 팬덤이 서로를 공격했고, 봉합된 듯 보였던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문드러졌다. 이후 멤버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그리고 남은 이들은 긴 공백기 속에서 사람들에게 잊혀갔다.
그리고 ―그의 모든 사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멘토처럼 따르던 이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다음 음반과 콘서트에서 보자던 약속은 영원히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남아버렸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들이 나를 떠날 수도, 내가 그들을 떠날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어쨌든 이별은 찾아오며, 그것이 준비된 일인지 아닌지, 그리고 최선의 선택인지 최악의 비극인지 그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Ⅴ.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그 작품에서 하차한다."라는 결정을 누가 할 수 있을까?
- 니지 5th 후기 3편, Part.02 中
지금 이 순간이 최고라는 주제 의식을 담은 작품에서, 영원의 일순이 다이스키를 외치는 캐릭터와 캐스트에게 엮인 것은 어쩌면 오래된 계획인지도 모르겠다. 하필 그 캐릭터의 이름은 세츠나(せつな, 찰나)이고, 캐스트의 예명도 토모스(灯す, 불 켜다)에서 유래했으니, 이게 정말 운명이라면 잔인한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불을 켠 자리가 흔들리는 촛불일지, 무한동력의 스포트라이트일지는 무대 밖에 남은 팬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이별을 택한 토모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헌사는 그녀가 바라던 완벽한 니지가사키와 세츠나를 응원하는 일이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완벽한 세츠나로서 니지가사키를 지켜준 토모리에게 ―개인활동을 모두 좇지는 못하더라도―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쭉 행복하길 기원하는 게 최선의 의무가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토모리가 다시 러브라이브에 얼굴을 비춰주길 바라며 말이다.
6년이 흘러, 그가 다시 전 동료들과 함께 옛 이름 그대로 음악을 이어가듯이,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남았지만, 팬들이 기억하는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다시 모인 이들이 있으니,
그리고 생전 그가 원했던 대로, 그의 곡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역작으로 인정받아 지금까지도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있듯이.
무엇보다, "아직도 얘네 안 죽었냐"라는 기분 좋은 비아냥을 들을 만큼, 지난날의 눈물이 무색하게 아직 우리 곁에 남은 이들이 있기에. 언젠가 모두가 웃으면서 마주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흐른다면, 러브라이브에서 토모리를 다시 보길 기대하며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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